[데스크라인]좋은 이웃, 나쁜 이웃

 올해 3월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가 됐다. 학부모가 됐다는 기쁨도 잠시, 뜻하지 않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이가 안전하게 등하교하려면 인접해 있는 W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통학로를 둘러싸고 두 아파트 입주민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 간 종종 다툼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그 일을 직접 당하고 나니 황당했다. 통학로 문제는 가까스로 해결됐지만 W아파트 입주민에 대한 섭섭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내가 딸아이의 학교 친구 부모들과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뜻밖에도 그 자리에는 W아파트에 사는 친구 부모도 나와 있었다. 식사를 함께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통학로 문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먼저 얘기를 꺼낸 쪽은 W아파트에 사는 딸아이 친구 아버지였다. 그는 “자식을 키우는 처지에서 아이들의 통학로 문제로 이웃끼리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면서 “요즘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W아파트 주민을 싸잡아 비난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식사 이후 우리 가족은 둘도 없는 좋은 이웃 사촌을 얻게 됐다.

 ‘이웃사촌’.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뜻하는 말이다.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모르겠지만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아마도 좋은 이웃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말일 게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지만 늘 행운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웃과 분쟁을 일삼는 나쁜 이웃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중국과 일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웃을 잘못 만난 것 같다. 한 쪽에서는 우리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우리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긴다. 두 나라는 늘 우리의 것을 탐내 왔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간 지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해왔던 미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한미 간 쇠고기 협상 문제로 한국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휩싸여 있는데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우리 국민의 재협상 요구에 툭하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들먹이며 반 협박(?)을 하곤 했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에는 20개월 미만의 소를 제공하면서 우리에게만 30개월짜리 쇠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한다. 속된 말로 한국을 ‘봉’으로 생각한 것 같다.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고시가 발효되면서 분노의 촛불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상생의 원칙’을 외면한 한미 양국 정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다. 앞으로 촛불의 함성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나쁜 이웃 문제 해결에 정부가 나섰다고 한다. 이웃 간 분쟁을 유발하는 등 주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면 상·중·하로 구분, 상으로 판정되면 집중관리 지역으로 이주시켜 감시하고 교육도 시킨다는 것이다. 지구촌에서도 이웃 국가 간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 사회에도 나쁜 이웃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남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며, 원치 않는 먹거리를 이웃에게 억지로 먹이려는 나쁜 이웃을 감시하고 ‘상생의 원칙’을 교육시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김종윤 탐사보도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