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통제냐, 심화한 경쟁이냐!’
통신 및 방송 규제 정책을 이끄는 두 거인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개막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비비안 레딩 유럽연합(EU) 정보사회미디어 위원장과 케빈 마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인터넷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이를 위한 규제 기구의 역할론에서는 큰 시각차를 드러냈다.
정보통신부 폐지 이후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가 협력 대상이자 벤치 마킹 모델인 두 규제 기관의 역할 모델 사이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도 주목된다.
첫 기조연설자로 나선 레딩 위원장은 “인터넷은 공기나 바다와 같은 공공재기 때문에 중립성·개방성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 역할은 규제 당국이 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곧바로 에스토니아 문제로 넘어갔다. 지난해 4월 사이버테러로 전 국가 시스템이 초토화되다시피한 에스토니아가 유럽에 준 충격을 상기시키며 인터넷 시대에 또 중요한 것은 ‘보안’이라고 역설했다. 규제 기관의 ‘통제 기구 역할론’을 다시 한번 제기한 것이다.
반면에 마틴 의장은 “규제가 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뒤처진 규제는 오히려 산업 발전과 소비자 편익 해치는 걸림돌이 돼 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규제 환경을 조성할 때는 경쟁을 장려하고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혁신을 유도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FCC의 이러한 기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최근 진행한 700㎒ 주파수 경매다. 그는 “주파수 일부 대역은 어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도 접근할 수 있도록 ‘망 개방’을 조건으로 제시해 소비자를 위한 기업의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700㎒ 경매는 미국 주파수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는 “다음에는 주파수 경매 조건으로 극빈 가정에 저속 초고속망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레딩 위원장은 기술 규제에 ‘보호무역주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유럽 모바일 TV 표준에 대해서도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유럽에는 단 하나의 모바일 TV 표준이 있는데 바로 DVB-H”라면서 “DVB-H는 모바일 세상의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지상파 DMB 방식의 유럽 진출 가능성을 놓고서는 “표준이란 DVB-H가 승리자라는 뜻”이라고 못 박았다.
마틴 의장은 가격과 같은 직접적인 문제를 통제하는 데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근 미국의 타임워너와 컴캐스트 등이 실시한 인터넷 종량제에도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과도한 트래픽 때문에 아예 초고속 인터넷을 막는 것(blocking)보다는 요금제를 차별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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