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시장 흔드는 조세피난처.’
이달 초 증권예탁결제원은 2007년 12월 결산법인 중 현금배당을 실시한 829개사가 외국인 주주에게 지급한 배당금액(총 5조1446억원)을 공개했다.
국적별로는 미국 국적 외국인이 2조4138억원으로 1위, 다음으로 영국이 5411억원, 룩셈부르크 3306억원, 벨기에 2342억원 순이었다. 5위는 영국령 케이맨제도로 2032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미국 아래쪽 쿠바 인근에 위치한 섬들로 이뤄진 케이맨제도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지역. 전체 인구가 5만8000명에 불과한 이 섬나라는 조세를 거의 부과하지 않는 조세피난처(tax haven)로 유명하다. 이처럼 조세피난처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케이맨제도는 국내 시장 투자 등록자 수에서 4월 말 현재 미국(8681명), 일본(2241명), 영국(1755명)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751명을 기록했다. 영국에 비해 불과 4명 뒤진 4위다.
지난해 12월엔 영국에 90명가량 뒤졌던 점을 감안해볼 때 이 추세 대로라면 조만간 영국을 제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맨제도는 2006년부터 국내 주식시장 외국인 배당금 순위에서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케이맨제도의 거래비중(9.7%)이 영국(30.5%), 미국(17.3%)에 이어 3위를 기록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건지, 버진아일랜드, 바하마, 라부안 등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적을 두고 있는 유명한 조세회피지역이다. 이들 지역이 기업의 유치 등을 목적으로 세금을 낮추거나 면제하면서 헤지펀드 등 투자자는 이름뿐인 페이퍼컴퍼니를 여기에 두고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투자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회피지역을 통해 전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세회피처 자금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국내 주식시장에도 많은 자금을 투자하면서 시장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의 돈세탁을 위해 이용하거나, 본국의 세금 징수를 회피(탈세)하기 위해 이 지역을 이용하면서 각국 정부는 법인세 감소 등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시장에서 익명성보다 투명성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조세피난처가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정부도 조세피난처에 민감하다는 방증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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