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오빠, 그분이 오셨다.’
인디아나 존스로 대변되는 해리슨 포드는 사실 우리(여기서 우리는 20대 중반∼30대 중반을 말함) 아버지 세대 인물이다. 1942년 생이니까 올해로 예순여섯이 된 그는 지금까지 총 3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많은 출연 편수도 존경할 만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는 수식어로는 뭔가 부족하다. 미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불리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두 편에 연거푸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두 편이 미국인에게 다가가는 의미는 특별하다. 스타워즈가 짧은 역사(200여년)로 신화조차 없던 미국에 ‘개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부여했다면 인디아나 존스는 무모하지만 유머러스하며, 다소 정치적이지만 다분히 자기만족적인 아메리카인이라는 그들만의 정체성을 완성한 작품으로 불린다.
미국인에게 영화 이상의 영화로 불리는 이 두 영화에 모두 참여한 해리슨 포드는 지난 2003년 ‘호미사이드’에서 조 가발린 역을 맡은 이후 최근 5년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후 파이어월 등 2∼3편에 영화에 참여했지만 그의 명성을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부터 다시 언론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해리슨 포드·케이트 블란쳇·시아 라보프 주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당연히(?) 인디아나 존스 역을 맡은 그는 5년간의 침묵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한 명연을 펼쳤다. 역시 포드는 존스였고 포드가 아닌 인디아나는 상상할 수 없다는 등식을 확인시켰다.
1989년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이후 19년 만에 귀환한 신작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후속작을 간절히 원하던 관객에겐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먼저, 육체 영웅의 부활이 반갑다. 사실 람보 등 몸을 무기로 한 육체 영웅은 냉전 종식과 함께 그 힘이 다한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인디아나 시리즈에서 관객은 육체 영웅(physical hero)의 유통 기한이 재연장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특히, 세월을 인정하듯 주름을 지우는 CG를 배제한 것은 물론이고 염색조차 하지 않고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의 모습에서 관객은 젊은 시절 노스탤지어까지 경험하게 된다. 물론 신비의 해골을 찾아가는 내용의 극의 중심은 존스가 아닌 ‘트랜스 포머’ 이후 아이돌 스타로 등장한 시아 라보프(머트 역)로 옮겨갔지만 존스가 만들어내는 포스는 2000년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지적 영웅(intelligent hero)’을 누르기 충분하다.
또 다른 반가움은 진실(true)이 아닌 사실(fact)을 찾는 영웅의 귀환이다. 과거 관객이 인디아나에 열광한 이유는 자신 앞에 닥친 수많은 난관에 맞서고 마침내 사실을 찾아내는 영웅의 모습 때문. 그러나 이런 장점은 2000년 이후 등장한 슈퍼히어로의 진실(정체성) 고민에 묻혀 영화 역사에서 점차 사라지는 듯했다. 심지어 이 영화는 개봉 1년 전부터 온갖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80년대 올드한 영웅이 디지털의 시대인 2008년에도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탈의 해골은 인디아나 존스의 진실 탐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뜬금 없는 의미 설정의 최신 히어로 영화에 힘들어하던 관객에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백발이 된 인디아나 존스는 당신에게 말한다. 아드레날린을 최대한 분산하라고… 실체 대신 이미지가 주가 되는 보들리아르의 시물라시웅 시대에도 인디아나는 주인공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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