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분야 성과는 지난 10여년간 우리 기업과 정부의 주요 성공담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IT산업의 성장도 주춤하고,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후퇴 기미가 보이며 고용 창출도 시원치 않다. 여기에 핵심 정부 부처였던 정보통신부는 구조조정되고, 정보통신 분야의 투자도 IT벤처 퇴조와 함께 이전만 못해 미래의 성장 잠재력마저 의심받고 있다. 최근 IT 분야 침체 원인은 그동안의 성공을 가져온 우리 정부와 IT기업이 변화 발전하는 시장수요, 글로벌 경쟁, 기술발전 추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있다.
IT가 이전과 같은 성장동력이 되려면 먼저 과거의 영광을 잊어야 한다.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버려야 하며 그것을 짊어지고 산으로 오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방송산업을 포함한 정보통신은 과거의 정부 주도적 기술개발 방식, 시장이 아니라 정부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전파자원 배분, 우리나라만의 폐쇄적 표준, 소수의 대기업과 이들 대기업별로 전속된 협력기업군으로 이루어진 선단형 제조기반, 기기와 서비스, 나아가 콘텐츠 산업까지 기업의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독점 지향적 산업구조로는 더 이상 곤란하다. 이러한 방식은 한정된 자원으로 선발자를 신속히 추격하던 시기에는 효과를 봤지만, 변화와 다양성이 핵심적 가치가 되고 시장의 선택과 효율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
IT 산업에 더 많은 선수(플레이어)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참여가 중요한데, 중소기업은 꼭 새롭거나 고급스러운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더 저렴한 서비스나 틈새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존 대기업 중심 구조보다 더 유리하다. 한편으로 전자전기 중심 기업뿐 아니라 금융·문화엔터테인먼트·유통·교육·의료·미디어·법률 등 과거 IT와 별로 관계없어 보이던 산업의 플레이어들도 참여하게 해야 한다.
퓨전(융합)은 여러 물질이 각각의 고유한 요소를 포기하고 새로운 성질을 가진 새로운 것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보통신은 제조·네트워크·서비스·콘텐츠를 구분하고 같은 세부영역에서조차 소비자·지역·용도별로 나누어 놓았다. 이는 일종의 칸 나누기로 경쟁을 제한하며 새로운 진입자를 막아 버리고 새로운 발상과 혁신을 통한 가치창출을 막는다.
이제 IT 산업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거대 시스템적 산업이다. 전자전기 기술뿐 아니라 문화적 창의력, 사회적 조직력, 뛰어난 경영능력, 효과적인 법률 기반 등이 모두 갖춰져야 하고 이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역학관계가 필요하다. 이는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이뤄지는 관계고, 많은 플레이어가 공정하게 협상하고 힘을 결집하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해가는 관계다. 아직 우리는 기업과 정부가 다른 영역,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와 퓨전을 일으킨 경험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이는 다른 나라도 거의 마찬가지이므로 먼저 융합을 성공시키는 나라가 미래의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다. IT가 다시 우리의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남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고 준비하는지에 따라 제대로 갈 수 있다.
김우봉/건국대학교 대학원장 business1@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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