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의 상큼한 향기, 스타킹 속 살결의 감촉, 또는 욕조에 몸을 담그기 전의 기대감.’
‘해피투게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왕자웨이 감독. 그는 언젠가 영화관을 이렇게 평한 적 있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연인을 기다리는 청년이 되고 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탐험가로 분한다고…. 왕자웨이가 아닌 우리 같은 범인에게도 영화관은 특별한 존재다. 무료한 현실을 잠시 잊는 도피처,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을 완성하는 절대 공간 혹은 가벼운 주머니를 한탄하며 즐기는 유일한 예술 장르가 펼쳐지는 곳도 바로 영화관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영화의 아버지는 프랑스 출신 뤼미에르 형제다. 하지만, 이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처음 만든 인물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보는 동영상을 만든 이는 다름아닌 발명왕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뤼미에르보다 2년 앞선 1893년에 사진을 연속 재생할 수 있는 ‘시네마토그라피’라는 영사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성공과는 달리, 우리는 에디슨을 영화의 창시자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모든 사람이 즐기는 집단 예술이라는 영화의 독특함 때문이다. 영화를 태어나게 한 것은 에디슨이 분명하지만 ‘감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영화 앞에 관객을 불러들인 이는 뤼미에르 형제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고 1895년 프랑스 그랑 카페에서 개봉된 ‘열차의 도착’은 3분 정도 되는 짧은 동영상이지만 ‘영화는 함께 보는 예술’이라는 정체성을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여기 ‘영화관’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다.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인 거장 35인이 만든 ‘그들 각자의 영화관(Chacun Son Cinema)’은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맞이하는 그 장소인 영화관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는 영화와 영화관, 영화를 만들고 보는 행위 자체를 매개로 벌어지는 다양한 일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이미 압도당한다. 감독들의 이름값(네임 밸류) 때문이다. 적어도 학창시절, 남몰래 키노를 읽었던 관객이라면 감히 부르지도 못할 이름이다. 기타노 다케시, 라스폰 트리에, 데이비드 린치, 월터 살레스, 차이밍량, 난니 모리티 등 이들이 받은 영화제 메달을 녹이면 동상 하나 정도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법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바친다’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영화의 주제는 ‘영화관으로부터 받은 어떤 영감’이다. 러닝 타임 3분이 안 되는 33개의 단편(국제 상영 버전에는 마이클 치미노와 코엔 형제의 단편이 빠져 있다)으로 구성돼 있지만 주제를 관통하는 모든 소재는 영화관이다. 하루 종일 영사기를 맴돌았던 소년의 오랜 기다림이 실현되는 곳(영화보는 날, 장 이머우)도 주말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과 그들을 쫓는 한 남자의 시선(아이러니, 올리비에 아사아스)이 겹치는 장소도 영화관이다. 영화관이라는 소재는 명감독들의 손길과 만나면서 환골탈태한다. 허우 샤오시엔과 첸 카이거가 그려내는 흑백 화면에는 사람과 영화를 동시에 사랑하는 대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테오 앙겔로풀로스, 거스트 반 산트가 만들어낸 화면에는 또 다른 거장 장 뤽 고다르에 대한 무한 애정이 드러난다.
한정훈기자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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