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반은 단체 결성의 황금기였다. 여기에는 국가 상황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내세웠던 경제정책의 골간은 기간산업 건설, 수출무역 진흥, 국가관리기업체 운영합리화 등이었다. 경제인들은 새로운 경제방침에 관심이 집중됐고 이는 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경제재건촉진회(전경련) 출범=대표적인 모임이 1961년 설립된 경제재건촉진회다. 삼성그룹 이병철, 락희그룹 구인회, 현대그룹 정주영, 금성그룹 김성곤, 삼호그룹 정재호, 삼양그룹 김연수, 대한그룹 설경동, 한국초자그룹 최태섭, 극동그룹 김용산 등 기업가 20여명이 모였다. 경제재건촉진회는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꿔 군사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집행 방향을 확인하며 정부의 요청을 수용했다. 이 단체는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기관명을 바꿔 현재까지 온다.
1961년 하반기 군사정부는 몇 가지 경제정책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전기·전화를 확대 보급하는 전화촉진 정책이다. 주요 기업들은 이 정책에 동조하며 성장했다. 국산 1호 라디오 생산으로 부상한 구인회의 금성사, 전화기와 교환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박율선의 동양정밀공업(OPC), 전선 분야에서 가정용 전기기기 분야 진출을 모색하던 설경동의 대한전선 등 전기통신 업체들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사업계획을 보면 신사업 진출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전기통신조합 잇따라 결성=1961년 12월 공포된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기업 활성화에 또 다른 전기를 제공했다. 기업의 경제적 기회균등과 자주적 경제활동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이 법은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술과 재원이 취약했던 전기통신 업계에 큰 힘이 됐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전기통신 업계를 3분하고 있던 전기공업·통신공업·전선공업계가 모두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의거해서 각각의 이익을 대변할 협동조합을 출범했다. 협동조합의 출범은 기업들이 정부기관이나 한국전력 등 대규모 수요처에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했으며, 개별 기업들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됐다.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안산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은 “전력 수요가 많지 않던 당시 농어촌 변화 사업과 함께 한전이 중소기업의 변압기를 대거 구매하면서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다”고 회상했다.
전기·통신조합 가운데 가장 먼저 출범한 곳은 1962년 4월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이다. 전기통신 분야 단체로는 유일했던 대한전기공업협회는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의 출범을 의결했다. 한국전력 등의 수요에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단법인과 같은 친목단체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전기조합 창립 발기인으로는 장병찬(이천전기 사장, 이하 당시), 김광준(국제전기기업 사장), 김지욱(대한전선 사장), 박승찬(금성사 사장) 등 14개 기업 대표가 참여했다. 정식 출범 때는 발기인을 낸 14개사 외에 진해축전지·광화전업사 등 30개 기업이 가세했다. 조합의 초대 이사장은 이천전기의 장병찬 사장이 맡았다.
한국통신공업협동조합(현 한국정보통신공업협동조합)은 전기조합보다 한 달 늦은 1962년 5월에 창립식을 했다. 1962년 1월 30일 중소기업령에 발맞춘 협동조합 설립 추진을 의결한 결과다. 협동조합설립추진위원으로는 이사장으로 선출된 국제전선 대표이사인 이임득과 최병무(대진공업), 조원육(연합공업) 등이 선임됐다. 추진위원회는 “강력한 협동정신으로써 결속 추진하여야만 소기의 성과를 걷을 수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전기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의거해 전국을 망라한 통신공업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바이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합 설립 취지서를 상공부에 제출하고, 같은 해 6월 30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조합의 정관은 통신기기의 생산·가공·수주판매·구매·보관·운송·서비스 등 모든 기업활동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을 주요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은 1963년 12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출범 근거를 확보했다. 시행령 개정에서 전기공업 및 통신공업에 각각 포함돼 있던 전선공업 분야가 중분류의 독립업종으로 분리된 것이었다. 시행령 개정과 함께 출범한 전선조합의 발기인으로는 김정도(중앙전선 사장) 등이 참여했다. 출범 때 회원사로는 대한전선·광화전업·조선기업·시온전기 등 통신조합 회원사 가운데 전선업종 기업들이 주축을 이뤘다.
◇법 제정, 활기=60년대부터 상공부 전기국과 체신부 전무국은 전기·통신 분야의 다양한 법 제정을 통해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들 관련법규는 전기통신공업 부문 활성화에 기폭제가 됐다. 기업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생산시설의 신설과 확장으로 이어졌다.
상공부가 60년대 중반까지 제정을 주도했던 주요 법규로는 5·16 직후 금성사의 국산 라디오 등의 보호육성을 위해 만든 ‘특정외래품 판매금지법’을 비롯해, 합법적인 공업표준을 제시한 ‘공업표준화법’, 전기용품의 품질관리에 역점을 둔 ‘전기사업법’, 불량 전기용품의 제조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전기용품제조면허규정’, 각종 전기기기에 대한 사용재료·구조 등 기술적 명세를 규정해 놓은 ‘전기용품 기술기준령’ 등이 있다. 65년 대통령령으로 제정 공포된 ‘전기용품제도면허규정’도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용품에 대한 제조면허와 형식승인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했다.
1962년 주식회사로 출범해 전기국의 직할대 역할을 했던 한국전력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초창기 한전은 적산전력계·변압기·계전기·전선·규소강판·애자 등 전기기기 및 소재를 포함, 철탑 제작설비의 수요를 이끌었다. 체신부 전무국 역시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로 공사화될 때까지 1960년대 우리나라 전기통신산업 수요 창출의 중심지가 됐다. 전화기·교환기·케이블 등의 수요가 모두 전무국을 통해 창출됐다. 체신부가 발표한 전화 촉진정책의 하나가 ‘통신사업 5개년 계획’이었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 5년씩 4차에 걸쳐 20년 동안 계속된 이 사업은 처음부터 군사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시작됐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5년 동안 추진된 제1차 계획의 목표는 지방통신시설의 보급, 전신전화시설의 확장, 전신요금의 현실화, 관련산업(통신기재분야)의 육성 등 크게 네 가지였다.
◆인터뷰-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안산상공회의소 명예회장, 전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설립 초반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은 산업계에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1960년대 한국전력에서 근무하고 이후 1980·90년대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14·15대)을 역임했던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69)은 전기공업협동조합이 60∼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에 큰 몫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전기조합이 회원사를 대변하며 업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업체 간의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권장했습니다. 이는 전기기기의 선진화를 유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전선조합, 조명조합 등이 독립할 정도로 역량이 커졌고, 전기공업진흥회도 생겼습니다.”
조합설립 초창기 한전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단체수의계약제도가 자리 잡기 이전부터 조합 주도 아래 관련 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소개했다.
“사실 당시 변압기 업체들은 매우 영세했습니다. 60년대까지 전력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죠. 한전이 변압기를 사주면서 업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통해 조합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조합의 요청으로 한전에서 단체수의계약제도를 채택했고 이것이 초반 전기 중소기업 육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임 회장도 14·15대 회장으로 있던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전기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당시 변압기 이외에 개폐기·자동변압조정기 등을 단체수의계약 품목으로 추가해 단체수의계약 규모를 3000억원대까지 높였다. 업계가 산업군을 형성하며 발전할 수 있는 데 크게 기여했고, 조합의 위상 강화에도 큰 몫을 했다.
임 회장은 최근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되고 전기공업의 위상이 약화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통신과 마찬가지로 전력도 개발을 기울이면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전기공업과가 사라지는 등 전기산업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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