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문화다.’
소프트웨어(SW)기업과 인력을 전문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는 공공 부문의 발주 체계 혁신을 통해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중소SW기업 육성을 위한 많은 정책은 공공 부문 사업에 참여하는 중소SW기업들이 수년간 바라왔던 숙원을 해결했다는 평을 얻었다. SW 분리발주, 이익률 향상, 대기업 참여 제한 상향, 공개SW 유지보수 대가 기준 마련 등의 정책은 발표와 동시에 중소기업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내SW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다. 지금까지 터전을 마련했다면 이제부터는 집을 지어야 한다. 집짓기에서는 전문화가 골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발주처 전문화 시급=글로벌SW기업들의 이익률은 30∼40%에 이른다. 그러나 국내SW기업 중 이익률이 30%를 넘는 기업들은 찾기 힘들다. 대표 기업이라고 하는 한글과컴퓨터나 안철수연구소도 이익률은 20%대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선진 기업을 만들어 내는 산업 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한 SW기업 CEO의 말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금융 관련 솔루션 개발을 하다 보니 유럽 한 은행의 발주제안서(RFP)를 보게 된 적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은 충분히 되는 두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단 몇 장에 불과한 제안서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더군요.”
백승호 세리정보기술 사장의 말이다.
RFP를 구체적으로 내놓기 위해서는 발주자들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전문가도 RFP를 작성하는 데만 1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다.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나타내야 그에 따른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국내 공공기관 대부분의 발주자들은 2∼3년에 한 번씩 해당 업무를 바꾸는 사례가 허다하다. 게다가 정보화 예산이 1년 단위로 편성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RFP 작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아무리 교육을 한다고 해도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급인력 양성 발등의 불=발주자들의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발자들의 전문성이다. 국내SW기업에 어려움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 중 하나는 ‘전문가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의 일을 특화시켜 주는 기업은 드물다. 아키텍트 전문 개발자를 꿈꾸는 한 개발자는 “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개발자보다는 좀 얇더라도 다방면의 일을 두루두루 할 수 있는 개발자들을 기업에서는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산업 구조 아래에서는 고급인력이 창의력과 기술력을 발휘해야 하는 기획과 설계 업무의 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이는 곧 고급인력의 이탈을 낳는 원인인 동시에 초급인력에게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다.
한국SW진흥원이 지난해 벌인 조사 결과 고급인력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기업의 충원율은 87%까지 올라가지만 중소기업은 절반을 약간 넘는 53%에 그쳤다. 업무의 전문화와 함께 SW인력의 역량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나 기술 수준별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정의에 따라 SW인력은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게 되고 발주자나 사업시행자는 이를 기준으로 인력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선진국은 SW 분야 ‘능력 표준’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자격제도와 연계해 국가 경쟁력 향상에 활용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 필요=대단위의 예산투입을 통해 표본이 되는 SW개발을 이끌어 내야 한다. 국내 프로젝트는 단발성 위주의 외주 용역에 그치는 사례가 많아 중장기적인 성장 구조를 갖추기엔 역부족이다. 정부는 디지털콘텐츠·임베디드SW·공개SW를 전략SW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개발에 투자된 예산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올해 임베디드SW 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은 100억원 남짓이다.
공개SW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 임베디드SW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임베디드SW 육성을 위해 편성된 예산이 올해에는 그나마 늘어난 것으로 안다”며 “전략 품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예산 규모”라고 꼬집었다.
공개SW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도입에 그칠 것이 아니라 활발한 개발 활동을 보장해 줘야 한다. ‘공개SW 소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개발 활동이 절실하다. 공개SW 개발에 동참할 뿐 아니라 개발자의 수준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개념부터 다시 잡자=SW산업을 전문화하기 위해서는 정의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SW산업 관련 법으로는 SW산업진흥법이 있으며 이 법은 공공기관이 SW 관련 사업을 할 때와 정부 지원책을 펼칠 때 기준이 된다. 현 SW산업진흥법에 따르면 SW산업은 ‘개발·제조·생산·유통 등과 이에 관련된 서비스 및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용 등과 관련된 경제활동’으로 정의된다. ‘SW의 개발·제조·생산·유통 등과 이에 관련된 서비스’는 SW기업의 업무 영역이고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용’은 IT서비스(SI) 기업의 업무 영역이다. 문제는 근거 법이 SW산업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단계별로 필요한 정보화전략수립(ISP)·업무재설계(BPR)·정보기술아키텍처(ITA)·IT진단·IT성과평가·IT거버넌스까지 구체화한다면 발주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지난해 예산작성지침 등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 SW사업은 BPR와 ISP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했지만 근거 법에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반면에 건설산업 정의는 매우 구체적이다. 건설산업은 건설업과 건설용역업으로 나뉘고 ‘건설업’은 건설공사를 수행하는 업, ‘건설용역업’은 건설공사에 관한 조사·설계·감리·사업관리·유지관리 등 건설공사와 관련된 용역을 수행하는 업으로 매우 구체적인 규정(건설산업기본법 제2조 정의)을 하고 있다.
유영민 한국SW진흥원장은 “개발 업무의 전문화와 분업화가 산업 구조 전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SW 공약 분석
“SW 부문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이 17대 대선에서 내놓은 ‘디지털 최강국 코리아를 위해 IT 7대 전략’ 중 두 번째 항목이다. 디지털강국을 이루는 데 SW산업 육성이 없어서는 안 될 조건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IT단체와 주요 언론사가 지난해 11월 20일 개최한 17대 대선후보초청 IT 정책포럼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는 디지털 절름발이 4대 요소를 들면서 한국 IT산업이 후발국에 쫓기고 있는 실정을 꼬집었다. 그가 지적한 디지털 절름발이 4대 문제점은 부족한 콘텐츠, 낮은 활용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SW, 열악한 중소기업 등이었다. 이 네 가지를 해결해야만 최강의 디지털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SW 부문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 당선인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대형선도사업을 펼쳐내겠다는 것이었다. 공공 부문의 SW사업 발주 확대를 통해 기업들의 먹거리를 늘려간다는 내용이다.
그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소프트화를 위해 필요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융합형 SW 인재 1만명 양성과 전문인력 10만명 양성 또한 과제 해결을 위한 공약으로 내걸었다.
간담회에서 당시 이 후보는 “전 세계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의 30% 정도는 인도인이지만 우리가 잘하면 이들을 앞지를 수 있다”며 “SW 고급인력 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을 10만명 이상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급 인력의 절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 산·학 연계 교육을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인도 등 외국의 우수 인력 유치도 병행하고 필요하다면 이민법도 바꾸어야 한다”며 “SW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해서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해 SW 10대 강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당선 이후에는 192개 국정 과제 중 지식기반 서비스산업 육성을 중점 과제로 내세워 SW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소기업제품 공공구매 확대 및 제도 보완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효율화도 일반 과제 중 하나로 내세웠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세계 각국의 중소기업 우수 인력 확보 정책지원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