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도 많이 나왔고 산업 발전가능성도 컸는데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사그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금융IT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가 IC카드 관련 산업을 보면서 꺼낸 말이다. 정부의 추진으로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금융감독당국의 IC카드 전환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했으며 파생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됐다. 문제는 추진 과정이다. 당연히 IC카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프라를 고려해야 했지만 그것을 간과했다. IC카드만 나오면 목표를 달성한다는 식으로 정책을 펼친 결과다.
◇감독당국의 안일한 정책=“비용부담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금감원 관계자가 VAN 사업자들이 IC카드 단말기를 보급하지 않는 것을 두고 밝힌 말이다. 이 관계자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IC카드에 마그네틱선(MS) 기능이 없을 때만 통한다. MS 인식 기능이 없다면 VAN 업계도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투자에 나서거나 또는 손익 계산 후 사업을 접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료로 단말기를 공급하는 상황에서 MS카드까지 인식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가격이 2∼3배나 높은 IC카드 전용 단말기를 이들 업체가 보급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VAN 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고작 건당 100원도 안 되는 수수료를 먹고산다”면서 “정부는 사회 환원사업을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산업계 피해 막심=정부의 IC카드 도입정책에 맞춰 단말기 공급 계획을 수립했던 수많은 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부도난 업체도 상당수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당시 개발비로 10억원 이상을 투입했던 모 업체는 시범사업에만 1500대를 공급했을 뿐 나머지 전부를 폐기처분했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툴과 장비를 함께 보급해야 했는데 (정부당국은) 카드공급에만 관심을 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미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국제인증까지 획득한 다른 업체 관계자도 “투자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해야 설치를 하는 것 아니냐”며 “현재는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IC카드 활성화로 수혜를 기대했던 전자화폐업계도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해결책은 없나=IC카드에 MS 인식 기능이 있는 이상 현재의 상황에서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카드의 사용기한이 5년이다. 만약 내년에 MS 인식 기능이 없는 IC카드가 나온다고 해도 5년 후인 2013년까지 가맹점에서는 MS 단말기만 보유해도 사용에 전혀 불편은 없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내년에도 MS 인식 기능이 없는 IC전용카드를 의무화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가맹점에서 굳이 요구를 하지 않는 이상 VAN 업계도 무리해서 IC카드 전용 단말기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존(MS 인식) 단말기와 IC카드 단말기 가격 차가 많이 좁혀졌다는 점이다. VAN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기존 MS 단말기 가격은 13만∼15만원이며, IC카드단말기는 17만원에서 20만원 수준이다. 그래서 정부가 약간의 정책적 지원을 한다면 이 문제도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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