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맛있는 영화]미스트

 ‘세상은 모두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평화로운 호숫가의 롱레이크 마을.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 뒤 기이한 안개가 몰려온다.

 데이빗은 태풍으로 쓰러진 집을 수리하기 위해 그의 어린 아들 빌리, 옆집에 사는 변호사 노튼과 함께 다운타운의 마트로 향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도중 동네 노인이 피를 흘리면서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고 소리치며 뛰어 들어온다. 마트 밖은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안개로 뒤덮여 있다. 마트 안에 있던 주민들과 데이빗, 그의 아들 빌리는 몇 시간 뒤 믿을 수 없는 괴물들의 등장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자연 재앙으로 인류가 위험에 빠진다는 설정은 할리우드에서는 흔한 소재다. 기상 이변을 다룬 ‘투모로우’가 그랬고 10개의 재앙을 다룬 ‘리핑’과 최근 개봉한 ‘나는 전설이다’도 무한한 자연의 힘에 노출된 인간의 무력함을 그린 수작들이다. 재난 영화 리스트를 뒤엎을 만한 작품이 개봉된다. 프랭크 다라본트가 선보이는 ‘미스트(Mist,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토머 제인·로리 홀든)’는 재난 영화의 결정판으로 불릴 만한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 콤비가 만든 작품으로 더 유명했다. ‘쇼생크탈출(1995)’ ‘그린마일(2000)’ 등 다라본트를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원작은 모두 킹의 머릿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라본트가 다음 작품으로 킹 소설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리 쇼킹한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집어든 작품이 지난 1985년 발표와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안개(미스트)’라는 점은 영화계에서는 긴급 뉴스로 불릴 만했다.

 거대한 괴물들과 안개 속에서 벌이는 생사를 건 사투를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쥐라기공원’과 ‘반지의 제왕’이 관객의 눈높이를 이미 하늘 끝까지 올려놓은 상황에서 다라본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다라본트도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라본트-킹’ 콤비를 8년 동안 기다린 관객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고립이 만들어내는 공포’로 화답했다.

 미스트에서 그려지는 그로테스크한 안개 속 풍경과 인간에 내재된 근원적 공포에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이 짜릿함을 위해 다라본트는 ‘킹콩’을 만들었던 그레그 니코테러가 이끄는 할리우드 최고의 드림팀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다라본트의 영도 아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기괴한 괴물들에 고립된 사람들,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내러티브에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녹여냈다. 특히 안개 속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괴생물체(촉수괴물, 익룡 괴물)가 주는 공포는 미스트를 최고의 재난 영화 반열에 올리기 충분하다.

 이와 함께 다라본트는 인물 내면에 대한 치밀한 서술도 잊지 않았다. 이미 쇼생크 탈출에서 폐쇄 공포증에 걸린 주인공을 제대로 그려낸 그가 아닌가. 끔찍하게 변해버린 세계에서 오직 생존 욕구만을 분출시키는 장면들은 우리의 뇌리를 스쳐 폐부에 파고든다. 당신의 목숨을 휘감아 오는 날카로운 촉수는 오는 10일 한국을 찾아온다.

한정훈 기자@전자신문,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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