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보기술(IT) 문제는 그에게 물어라.’
8년간을 오로지 현대차그룹 IT 인프라 개선에만 전념해 온 인물. 상무 시절 CIO 직을 맡아 부사장인 현재까지 CIO로서 ‘글로벌 톱 5’ 신화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뚝심의 사나이. 팽정국 현대차 그룹 부사장(53)에게 붙은 수식어다. 그만큼 현대차의 IT 프로젝트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를 양재동 사옥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2001년부터 그를 봐왔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CIO가 아닐까 싶다. 거의 30분 단위로 쪼개진 그의 일정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주에는 ‘올해의 CIO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탕한 웃음으로 반기는 팽 부사장에게 글로벌 전사자원관리(ERP)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물어보니 손을 내젓는다.
“글로벌 ERP 얘기는 지겹도록 많이 했다. 다 알려진 내용을 5년 동안 물을 거냐?”
세계가 주목하는 현대차의 글로벌 ERP 프로젝트는 올해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국내 공장 간에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생산체제 효율화를 달성했다.
매번 하는 IT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던 그지만 지난 2002년 애정을 가지고 만든 e프로큐어먼트(구매조달시스템) ‘바츠닷컴’이 40조원대의 구매를 하고 있다고 귀띔해준다. 그룹 계열사들과 공동 구매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현대차의 굵직굵직한 IT 프로젝트는 전부 그의 머리에서 나와 그의 입으로 외부에 전해진다. 그래서 IT업계에서는 정몽구 회장보다 그가 더 유명세를 탄다.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었다”=그는 6·25 사변 이후 혼란스러웠던 1954년 부산 범일동에서 3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라를 바르게 만드는 데 도움이 돼라’는 생각에서 정국(正國)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생후 100일 만에 서울로 상경해 어머니가 교사로 재직하던 수도여고 근처에 살았다.
그의 희망은 ‘대통령’이었지만 현재는 남들이 인정하는 국내 최고의 CIO가 됐다. 그는 “이제는 현대차를 세계 최고의 IT 자동차업체로 만드는 것이 현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현대차 IT의 얼굴”=지난 2000년 당시 국내 산업계에 불어닥친 e비즈니스 도입 바람은 최대 완성차업체인 현대자동차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차는 기계공학·자동차공학 등 이공계 출신 임원이 많았지만 과연 누구에게 이 큰 과제를 맡길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자동차 시장의 영업 질서는 물론이고 구매 관행·생산시스템, 나아가 조직 자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올 e비즈니스 도입에는 뛰어난 리더십과 IT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 절실했다.
팽정국 부사장과 현대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현대차는 제너럴모터스(GM) EDS·삼성자동차 전자화연구소장·삼성전자 이사를 거친 그를 주목했다. 수차례의 러브콜 끝에 그는 2000년 현대차 CIO(상무)로 부임, 생산에서 판매·정비·폐차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의 e비즈니스를 추진하게 된다.
“현대차는 당시 기업 차원의 정보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였어요. 효율적인 정보관리 그리고 최적화, 정보 혁신 단계에 이르기까지 지난 7년 동안 쉴 새 없이 진행돼 온 현대차 IT 혁신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가 CIO가 된 이후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글로벌 완성차업체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IT 인프라를 구축하게 됐다는 평가다. 특히 올해 들어 최적의 생산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기존 ‘APS(Advanced Planning & Scheduling)Ⅰ’을 개선한 ‘APSⅡ’시스템의 성공적인 적용으로 판매 및 생산업무 등 공급망관리(SCM) 전반에 혁신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또 자동차 산업의 필수 기간계 시스템으로 간주되는 ‘차세대 자재명세서(BOM)’를 지난 6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올해 본격 가동함으로써 도요타자동차가 200명 인원으로 6년 걸리던 작업을 20명의 인원으로 6년 만에 완성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했다.
◇“나를 설득하라”=“예전에는 보고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보고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예산권을 갖고 현업 부서에 대한 스폰서를 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IT프로젝트에 관해서는 ‘나를 설득해서 하라’고 합니다.”
매년 2000억원의 엄청난 IT 예산도 그의 머리에서 짜진다. “MK 회장과는 한 달에 한 번 독대해요. 큰 투자건 외에는 제가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회사는 지난 2004년부터 ‘PI’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경영혁신을 자연스럽게 얘기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정보 부문에서 지원하지요. 자동차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답니다.”
그는 CIO의 핵심 역량에 대해 ‘투자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고 경영층을 설득하는 것과 현업의 요구 파악 능력,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 제품에 대한 지식을 들었다.
팽 부사장은 현대차그룹이 IT 최적화 단계에 와 있다고 자신한다. 곧 정보 혁신 단계로까지 갈 것이라고도 했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업체 가운데 IT 경쟁력에서 최고가 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어요.”
실제로 아직 레거시 환경을 고수하는 도요타나 폴크스바겐 등 세계 정상급 완성차업체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표준 IT 인프라를 구축 중에 있다. 향후 현대차 IT 환경이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팽 부사장의 말이 설득력을 더한다. “IT 없이는 자동차 못 만들어요. IT 경쟁력이 곧 자동차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화 수준 세계 1위의 시기를 ‘내년 말’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창립 40년밖에 안 됐지만 신기술 수용 속도가 빨라 100년 된 회사보다 IT가 앞서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ERP가 완성되는 오는 2010년까지는 일에 욕심을 부릴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나 제대로 해외 여행 한 번 못 가본 부인에게 ‘충성’을 다할 작정이란다.
△팽정국 부사장=1954년 부산에서 출생한 팽 부사장은 72년 배재고를 나와 77년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학사), 79년 한국과학원 기계공학과(석사)를 졸업했다. GM EDS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후 EMRC(GM의 SW 용역업체) SE 매니저를 역임했다. 그 당시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도 취득한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97년 삼성자동차 전자화연구소장, 삼성전자 이사를 거쳐 2000년 3월부터 현대차그룹의 CIO로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IT 수준을 이미 세계적인 반석 위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가족은 부인과 1남 1녀.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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