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무병장수를 바라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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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미국 의학드라마 ‘하우스’를 보니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암 전문의가 6개월 전에 어떤 환자에게 말기 암을 진단했고 남은 기간이 6개월뿐이라고 일종의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3개월 후 상태를 재진단하던 차에 놀랍게도 ‘암’이 아니라 단순히 양성 종양이었음을 발견하게 됐다. 의사는 자신이 환자의 3개월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환자가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환자에게 희망을 전한다.

 그런데 그 환자는 ‘살 수 있다’는 뜻밖의 희망적인 소식에 절망한다. 3개월 전 사망선고를 받은 그 환자는 평생을 일해서 마련한(아마도 여전히 융자할부금을 갚아 나가고 있었을) 집을 팔고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비행기 티켓도 마련했다.

 이제 그에게 불안한 미래를 위해 아껴둬야 할 삶의 의무가 남아있지 않으니 집을 지켜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을 팔고 미래를 위한 저축에 얽매이지 않으니 비로소 유럽 여행의 꿈도 이룰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만큼 이제서야 ‘살아가는 것’의 부채에서 벗어나서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통 사람의 집 장만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 역시 집 장만을 위해 꽤 긴 시간을 할부금 갚는 데 보낸다. 50대로 보이는 그 환자에게 ‘현재’는 담보로 잡혀 있는 ‘남은 삶’을 살기 위해 이자 갚기에 급급한 생활이었을지 모른다.

 삶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야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지만 그 환자는 결국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할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그리고서야 그는 “이제서야 진짜 사는 것처럼 살게 됐다”고 느끼게 됐다. 현재의 삶에서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가져다주는 여유를 즐기게 된 것이다.

 남은 삶을 포기하자 현재가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진시황을 비롯한 대대로 인류가 그토록 바라왔던 ‘장수’의 꿈을 무색하게 하니 말이다. ‘장수’의 희망은 사람이 수명이 늘어나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가치나 행복이나 기타 등등 삶의 모든 결과물을 늘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수명이 늘어나면 총량은 증가하겠지만 결국 순간 순간의 가치나 행복을 규정할 때는 다시 늘어난 수명만큼으로 나눠야 하니 순간의 행복은 늘어난 수명에 비해 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삶과 순간 순간의 행복에 과연 이런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개념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문득 그 에피소드를 기업의 생명력과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 역시 탄생이 있고 성장이 있고 도약기와 또 쇠퇴기가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과 비슷하다. 또 100년을 지탱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미국의 한 경영컨설팅 회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5년 된 회사가 살아남을 확률은 38%, 20년 된 회사의 생존율은 10%, 50년 된 회사는 2% 그리고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을 확률은 불과 0.5%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쯤 되면 기업도 사람만큼이나 장수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기업은 불치병이라는 것이 없다. “생존기간이 6개월 남았다”는 식의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없다. 실제로는 유한한 존재일지라도 기업은 개념상으로는 무한하다.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한 그 환자처럼 정해진 수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날을 정리하며 ‘즐겁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리고 보면 기업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은, 기업의 활동에 참여해서 기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보다도 더욱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기업이야말로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병이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벌써 12월이라는 달력의 무게 때문인지 요즘은 부쩍 세월이 흐른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지선 미디어유 대표 easysun@media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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