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나의 인생

 ■나의 인생

 이주용 지음, 전자신문 펴냄. 

 “우리나라 정보 혁명의 씨앗이 되리라.”

 KCC정보통신 창업자 이주용 회장의 일대기를 엮은 회고록이 나왔다. KCC정보통신 40주년을 맞아 출간한 ‘나의 인생’에서 이 회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겪은 경험을 담담하게 엮어 나가고 있다. 형태는 자서전이지만 이 책은 반세기 동안 일어난 굵직한 국내 컴퓨터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회장은 국내 정보산업의 선구자와 같은 인물이다. 컴퓨터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한 시절 미국 IBM에 입사한 1호 한국인이며 국내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들여온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어려운 시절 유학 생활 중 겪었던 에피소드, 고국에 보답하겠다는 신념으로 택했던 귀국길, 정보화 확산과 계몽을 위해 교육에 앞장섰던 일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글 곳곳에 묻어나는 다소 거친 어투는 직설적인 이 회장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있다. 자서전이 갖는 맹점의 하나인 자칫 신변잡기로 흐르기 쉬운 점을 역사적 사실과 적절하게 버무려 맛깔스럽게 풀어내 놓았다.

 이 회장의 ‘나의 인생’은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인생을 바꾼 사건이 컴퓨터와 만남이었다. 미시간대학 졸업 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이 회장은 대학 담당 교수에게서 연구소 전산실 운영 업무를 소개받았다. 컴퓨터에 남보다 눈을 먼저 뜬 것을 계기로 그는 결국 IBM에 첫 번째 한국인으로 입사했다.

 이후 1960년대 초 한국IBM을 설립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우리 경제는 최악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78달러, 연간 전체 국민총생산이 30억달러로 IBM이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보다 적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상황이 정보화만이 살길이라는 이 회장의 신념에 불을 댕겼다.

 결국 그는 컴퓨터산업에 영원히 남을 이정표를 남겼다. 1호 컴퓨터 ‘FACOM222’를 한국 땅에 들여왔다. 대한민국 컴퓨터 역사는 그렇게 열렸다. 이 회장은 당시를 “내가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고 나를 낳아준 조국에 보답하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정보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보화 분수령이 됐던 과학기술처가 출범했고 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정책이 수립됐다. 각 신문사에도 과학부가 만들어졌다. 대형 전산화 프로젝트도 줄을 이었다. 은행권 첫 정보화사업이었던 한국은행 금융업무 전산화(1967년)를 비롯한 치안본부 주민등록 전산화(1976년), 김포공항 출입국 관리와 철도 승차권 온라인화(1980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 전산화(1983년) 등 초기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가 이 회장의 손을 거쳤다.

 이주용 회장 그리고 그와 함께 한국 IT역사를 이끌어왔던 1세대 주역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 회고록이 단순히 저자만의 추억거리에 머물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국내에 컴퓨터라는 불모지를 개척했던 IT산업 초창기 1세대의 치열했던 고민과 뼈를 깎는 헌신이 담긴 회고록이다. 국가 앞날을 내다보고 컴퓨터 보급에 발 벗고 나선 분의 땀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와함께 1세대 선각자가 개척한 길은 후배에게 자신감과 가능성을 심어주었음을 사실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1만8000원.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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