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유선의 미래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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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침 가족과 모처럼 서울 근교로 등산을 갔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등산길에는 산중턱 조그만 산사까지 ‘광케이블 매설’이라는 푯말이 수십미터 간격으로 산행의 표지판 역할을 해주었다.

 자칫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푯말이지만 등산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이 푯말은 의미있게 다가왔다. ‘이제 도로가 뚫리고 마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초고속 광케이블이 연결돼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국가정보화지수 3위, ITU 디지털기회지수(DOI)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정보화 선진국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KT 민영화 이후 경쟁환경 정착과 인프라망에 대한 고객중심의 투자의 결과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건물과 거리 지하에는 통신선이 지나가는 공간이 있다. 이른바 ‘통신구’라 불리는 이곳에는 스물다섯개 색깔로 조합해 놓은 구리선 다발과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광케이블망이 지나다닌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5만㎞가 넘는 광케이블이 전국에 깔려 있다. 광케이블 특성상 한 가닥이 아니라 수 가닥에서 수십 가닥 이상 엮여 있기 때문에 실제로 총 연장 길이는 1000만㎞는 족히 넘을 것이다. 지구와 달을 적어도 열세 번은 왕복할 수 있는 엄청난 길이의 광케이블이 이 좁은 한반도에 빼곡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선들을 이용해 우리는 전국 어디나 전화 통화를 하고 최고 100Mbps에 이르는 초고속인터넷을 연결해 대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오히려 네트워크 확장속도에 비해 가정이나 개인이 사용하는 통신단말이 트래픽 용량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트워크의 광대역화는 비단 유선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무선으로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도 유선망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휴대전화 통화에서 무선으로 연결된 부분은 단말기와 기지국 사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선망을 통하게 돼 있다.

 더구나 3G나 와이브로를 통한 무선데이터 서비스의 활성화로 무선의 셀 단위는 매크로에서 피코, 또는 팸토셀 단위로까지 축소되고, 유선은 소형 셀의 액세스 포인트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이렇게 무선 브로드밴드 서비스가 확산되면 될수록 그 기반이 되는 보이지 않는 유선망의 중요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무선은 더 짧아지고, 유선의 영역은 점점 확장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선망의 사용가치가 커지고 있는데도 통신시장에서 입지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마치 물이 다이아몬드에 비해 사용가치가 크지만, 교환가치가 작은 ‘가치의 역설(逆說)’이 통신 네트워크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입지 변화는 유선망이 이제 모든 사회경제 활동의 기본 인프라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입지를 굳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금은 유선 사업자가 해야 할 역할은 더 많아지는데 투자여력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망에 대한 투자와 수익성 사이에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지 못하면 성장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신규 서비스 도입마저 저해된다. All-IP와 유무선 브로드밴드화 그리고 디지털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전환되는 현 상황에서 유선망을 유지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통신사업자의 새로운 역할 정립과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선망 없이는 미래 정보통신도 없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미래 IT서비스의 기본은 광대역 통신망에 있다. 향후 수년 내에 광대역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모든 기기들이 통합된 네트워크가 구축될 것이고 그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콘텐츠를 생성함으로써 다양한 양방향 통합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망을 설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단지 통신수단의 유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통신망이 서로 다른 세상과 소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없애고 지역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고속도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유태열 KT 경영연구소장 yooty@k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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