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5부 로봇강국으로 가는길②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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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을 역임한 롤프 옌센은 앞으로 정보사회를 대신해 이야기(story)가 중심이 되는 드림소사이어티가 온다고 예견했다. 그의 이론은 지능형 로봇시장에도 잘 들어맞는다. 로봇의 기계적 성능이야 조만간 평준화될테고 어떤 콘텐츠를 담느냐가 로봇의 상품가치를 더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중순이면 패밀리 레스토랑인 ‘빕스’의 도곡점 및 어린이대공원점에 국내 최초로 외식 도우미로봇이 배치된다. 도우미 로봇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 “김창식 고객님, 오늘 생일 축하드립니다. 2층에 자리 비워 놓았습니다.” 어서 오시라는 몸동작은 기본이고 레스토랑이 보유한 고객DB를 활용해서 각 손님에게 맞는 접대성 멘트도 날려준다. 미리 음식주문도 받고 예약이 안된 손님에겐 대기시간을 휴대폰 메시지로 알려준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손금을 봐주거나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기도 한다. 식당을 찾아온 고객들이 로봇기반의 새로운 접대 서비스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실 레스토랑에서 고객을 접대하는 업무를 굳이 로봇 웨이터에게 맡겨야 더 효율적이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참 궁색하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점원이라면 그깟 로봇보다 훨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스토랑에 수천만원짜리 로봇을 배치하는 진짜 이유는 고객들에게 뭔가 재미있고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어제 로봇 레스토랑에 가서 밥 먹었다”고 자랑할 것이다. 연인들은 로봇 소믈리에가 서빙하는 와인잔을 부딪히면서 기념일을 챙길 것이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기억하는 ‘로봇 이야기’는 결국 고객검색 알고리듬, 접대성 멘트, 대기시간표, 메뉴정보, 오늘의 운세 등 여러 콘텐츠가 기계로봇을 통해 표출된 결과다. 이처럼 로봇이 작업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체계를 가리켜 로봇콘텐츠라고 정의한다.

 콘텐츠 없는 지능형 로봇은 프로그램이 안 깔린 PC,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로봇이 수준 높은 서비스를 실현하려면 그에 걸맞는 로봇콘텐츠의 개발이 반드시 병행되야 한다.

 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외식 도우미로봇 개발사인 ED는 CJ푸드빌과 손잡고 시범사업을 진행한 이후 전국 빕스 매장에 로봇을 보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도우미 로봇에 고객의 감성변화까지 인식하는 고급 콘텐츠가 탑재되면 식당가는 물론 서비스업계 전반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초창기 PC시장이 그러했듯이 로봇콘텐츠의 진보는 지능형 로봇시장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로봇콘텐츠의 현황=지능형 로봇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콘텐츠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중소 로봇기업 입장에서 로봇의 기구개발만도 벅찬 일인데 정보제공, 오락, 교육 콘텐츠까지 홀로 완성하기란 제약조건이 많았다. 여기에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위한 인터페이스(터치, 음성, 비전)도 로봇회사마다 제각각 달라 콘텐츠 개발은 더욱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지능형 로봇에 대한 드라이브 덕택에 이웃 일본보다는 로봇콘텐츠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올해 시작된 2기 국민로봇사업을 보면 로봇플랫폼 제조사 외에 한국몬테소리, 금성출판사, 모빌토크, 푸르네닷컴, 나우콤 등 콘텐츠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상황이다.

 콘텐츠업계의 로봇시장 진출에는 로봇을 새로운 미디어 채널로 확보하려는 장기포석과 함께 기존 뉴스, 날씨, 교육 콘텐츠를 약간만 수정해도 로봇에 탑재할 수 있다는 안이한 판단이 감지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로봇의 특성을 무시한채 무작정 외부 콘텐츠를 공유하는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로봇사업단이 가정용 URC로봇을 테스트한 결과 뉴스, 날씨정보를 그대로 읽어주는 서비스는 고객 만족도가 낮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TV, 라디오로 쉽게 접하는 뉴스를 굳이 로봇음성으로 듣기 싫어했다. 반면 교육용 콘텐츠는 인간과 로봇간의 상호작용을 지원하는 양방향 서비스에 유리해 좋은 평가를 얻었다.

 ◇로봇콘텐츠, 표준화가 선결과제=현재 로봇콘텐츠 시장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표준화 문제다. 그동안 A로봇회사가 개발한 로봇콘텐츠는 B사의 로봇제품에선 호환이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좁은 지능형 로봇시장에서 콘텐츠의 호환성 부족은 로봇 콘텐츠업계의 수익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로봇회사마다 제각각인 콘텐츠 개발환경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올들어 18억원을 투입, 로봇콘텐츠 통합개발도구의 베타버전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개발한 로봇SW개발툴인 MSRS를 내세워 로봇콘텐츠시장의 표준선점을 노리고 있다. 10월부터 국내 MS관련 프로그래머 10만여명에게 MSRS를 보급시켜 윈도기반의 로봇콘텐츠 제작환경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유진로봇도 자체 개발한 로봇 콘텐츠 저작도구를 보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지능로봇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한 결과 노인 건강을 돕는 실버서비스, 시각장애인 도우미 서비스 등 창의성이 돋보이는 로봇콘텐츠가 대거 접수되어 놀랐다는 후문이다. 정통부의 오상록 로봇PM은 “로봇콘텐츠의 호환성만 보장된다면 지능형 로봇에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하는 시도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콘텐츠가 표준화된 이후의 비즈니스 모델은 상상력을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아이팟에 음악을 다운받듯 로봇도 비보이 댄스를 추거나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유료로 구매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한정혜 청주교대 교수

 “인터넷에 있는 동영상을 그냥 로봇 모니터에 띄운다고 로봇콘텐츠는 아닙니다.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의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

 한정혜 청주교대 교수(37)는 교육분야에서 로봇콘텐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왔다. 한 교수는 최근 교육용 로봇의 콘텐츠 형식이 아동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다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교육용 로봇에 아이들 얼굴을 캡처해 영어동화의 주인공으로 합성시키는 콘텐츠 제작기능을 넣었더니 학습의 몰입도와 동기유발이 놀랍도록 향상된 것이다.

 “로봇이 직접 만든 영어동화 콘텐츠는 똑같은 내용의 동화책, 카세트 테이프, PC영상보다 아이들의 몰입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로봇 모니터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가 나오니 당연히 좋아하지요. 로봇의 자율성이 콘텐츠의 교육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라고 봅니다.”

 한 교수는 로봇은 촉각, 시각, 청각을 통해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붙박이 PC용 콘텐츠를 그대로 갖고 와서는 고유한 장점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용자에 따라 로봇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변하도록 감성적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콘텐츠 개발에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향후 로봇콘텐츠도 유망한 문화산업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로봇콘텐츠란 결국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가정용 로봇이 연장자를 먼저 배려하게 프로그램하면 역시 한국산 로봇은 예의가 바르다며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겁니다. 로봇한류가 별건가요.”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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