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폰을 사는 순간엔 큰 혜택을 받은 것 같은데 결국 요금에 전가됩니다. 요금에 장려금을 포함하는 성격이라 오래 쓰면 쓸수록 소비자가 손해볼 여지가 높습니다.” 테츠지 요코테 총무성 요금담당과장.
“휴대폰을 살 때 오래 쓴 사람보다 새 가입자가 더 싸게 휴대폰을 살 수 있는 게 문제입니다. 오랜 고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나가타 미키 동경도지역부인단체연맹 사무국차장
일본 이동통신시장이 최근 보조금 폐지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은 세계에서 요금 수준이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다. 일본 정부와 소비자단체는 주범으로 보조금을 지목했다. 총무성은 산하에 모바일비즈니스연구회를 구성해 이달부터 보조금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으며 내년에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0엔 휴대폰 경쟁에 빠진 일본=일본에선 최근 공짜폰 경쟁이 뜨겁다. 자신의 휴대폰을 그대로 쓰면서 사업자를 바꿀 수 있는 번호이동성제도(MNP)를 도입하면서 더욱 불붙었다. 후발사업자인 소프트뱅크의 공세가 가장 거세지만 최근엔 1위 사업자인 NTT도코모까지 가세했다. 아키하라바의 대형 양판점을 비롯, 도심 인근의 휴대폰 매장을 찾으면 손쉽게 0엔, 1엔짜리 휴대폰을 볼 수 있다. 일본 이통사가 소비자 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은 평균 3만6000엔까지 치솟았다.
토시히로 테라니시 NTT도코모 요금제도담당과장은 “이통사업자가 많았던 2001년까지 기본료 중심의 인하 경쟁이 펼쳐졌다면 이후에는 가족 할인, 대학생 할인 등 할인 프로그램 위주의 경쟁으로 전환됐다”며 “최근 번호이동 도입 후 보조금과 요금 경쟁이 다시 불붙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보조금이냐 요금이냐=메릴린치의 2007년 1분기 ‘글로벌 와이어리스 매트릭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분당과금(RPM:Revenue per minute)액이 0.25달러로 스위스(0.29달러)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높다. 가입자당매출(ARPU) 49.76달러, 데이터 매출 비중 29%로 지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업자 수익도 그만큼 높아야 할텐데 정작 사업자 수익률 척도인 에비타(EVITDA) 마진은 23%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매출이 높은 데도 수익이 적은 이유가 바로 보조금 등 마케팅비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가입자당 매출이 높은 데도 수익률이 낮은 것은 우리나라와도 유사하다.
다른 것은 소비자와 정부의 태도. 일본 소비자들은 사업자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도 요금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보조금만큼은 다르다. 0엔 휴대폰 경쟁을 위해 사업자들이 쏟아붙는 보조금이 요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업자들은 가입자 1인에게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일정해 그 범위 내에서 보조금과 요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테츠지 요코테 총무성 요금담당과장은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리베이트가 존재하듯 보조금을 아예 없애는 게 시장 논리에 맞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보조금이 요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고 많은 보조금과 낮은 요금 중 소비자가 선택의 폭을 갖도록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테츠지 요코테 총무성 요금담당과장
“단말 보조금과 요금제를 더욱 투명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 불필요한 논쟁도 줄일 수 있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조금 대책을 마련중인 테츠지 요코테 총무성 요금담당과장은 합리적인 경쟁구도 정착을 기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떤 방식의 보조금 규제를 검토 중인가
▲여러가지 선택사항을 놓고 고민 중이다. 과도한 장려금은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소비자에게도 형평성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보조금을 많이 받거나 아니면 싼 요금을 원하거나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방법이다. 휴대폰이 0엔으로 팔려도 상관없지만 이게 요금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소비자에게 알리려 한다.
-SIM카드 개방도 준비 중인데
▲WCDMA를 도입했는데도 일본에선 사업자를 바꾸면 휴대폰도 교체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책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NTT도코모와 소프트뱅크와 달리 KDDI는 CDMA 방식이라 SIM카드 개방시 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장기과제로 실행방안을 연구 중이다.
-일본에는 요금 관련 규제가 있는가
▲과거 사전인가제나 신고제를 운용한 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업자 자율적으로 요금을 정한다. 정부의 목표는 이통사 간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며 요금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바람직한 요금제 논의 구조를 제시한다면
▲이동전화는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라는 점에서 공공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요금에 개입하는 게 효과적이지는 않다. 일본에서도 국민당 등 정치권에서 간혹 요금 인하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정부는 경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통신 소비자들
◇<일본 시민단체> 나가타 미키 동경도지역부인단체연맹 사무국차장
소비자 단체가 요금 인하를 주장한 사례는 없다. 다만 정부를 통해 소비자 의견을 전달한다. 일본 이통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저이용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보조금이나 정액제 등 상당수가 휴대폰을 자주 바꾸거나 많은 쓰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음성통화 중심으로 사용하는 노인층에 적합한 요금제가 부족하다. 휴대폰 구매 비용은 소비자가 선택에 따라 부담하는 것이 맞고 이를 지불할 용이도 있다. 요금 중심의 경쟁이 필요하다. 보조금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모으는 중이며 7월 9일 전국소비자단체 등과 함께 학습회를 만들어 폐지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유키 아다치 메이지대학 법학부
98년 중학교 3학년때 이동전화에 처음 가임해 지금은 KDDI의 ‘AU’를 사용 중이다. 대학생에는 50% 할인 헤택이 있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한달 평균 요금 수준은 1만엔이다. 최근 취업 준비를 하면서 메일 등의 데이터 서비스 사용빈도가 늘었다. 요금이 특별히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보조금이 많은 것보다는 요금이 저렴한 게 좋다.
◇나카지마 토모히로 메이지대학 법학부
중학생때 이동전화를 쓰기 시작했다. 한달 평균 요금은 8000엔∼1만엔 수준이다. 일본의 기본료는 다소 비싸다. 무료 통화 제공이나 통화료 할인 등 혜택 제공하지만 기본료 수준 이상의 체감 효과가 없다. 휴대폰 교체 빈도가 잦아 장려금이 많은 게 좋다. 휴대폰 교체주기는 보통 1년 정도다. 휴대폰 값이 비싸지면 자주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정꽃나래 상지대 신문학과(유학생)
일본 요금 수준은 한국과 비교해 다소 비싸다. 휴대폰 가격은 일본이 더 싸다. 비교해보면 일본이 더 안좋은 것같다. 휴대폰보다는 요금 저렴한 게 더 부담이 적은 것 같다. 유학생이라 기본료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뱅크의 ‘화이트플랜’에 가입했다. 980엔 기본료에 저녁 9시∼새벽 1시를 제외하곤 무료통화를 제공해 저렴하게 쓸 수 있다.
◆취재후기-합리적인 소비가 사업자 경쟁을 촉발한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은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다. 보조금 수준이 높다보니 소비자들이 고성능 휴대폰 구매를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이동통신사들의 데이터 서비스가 일찍부터 발전했고 휴대폰 제조사들도 시장 확대 효과를 거뒀다.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양국 사업자들의 수익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하다. 일본의 에비타 마진이 23%, 우리나라가 29%로 세계 평균 40% 보다 낮다. 세계 최저 요금을 제공하는 홍콩 사업자들이 20%의 수익을 거두는 것과 비교해도 높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경쟁의 초점이 요금이냐, 아니면 보조금이냐 정도다. 어떤 방향이 옳은 지 정답은 없다. 이를 어떻게 유도할지 정부 정책이 중요 변수지만 소비자의 선택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통신 시장에서 사업자 선택의 첫째 조건이 여전히 싸고 저렴한 휴대폰이라는 점은 다시 한번 돌아볼 사안이다. 수시로 변하는 보조금을 가입유치 수단으로 쓰는 사업자도 문제지만 이익을 쫓는 기업 생리를 마냥 탓할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 저렴한 요금제를 찾으려 노력하고 합리적으로 사업자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노력이 어쩌면 가장 빠르고 강력한 요금인하 수단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일본 정부처럼 보조금이 어떻게 요금에 영향을 미치는지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려 합리적 선택을 도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도쿄=김태훈기자@전자신문, t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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