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통합 여부를 놓고 두 차례 이사회 일정을 미뤄온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이사회가 끝내 결정을 유보해 파문이 예상된다.
ICU 이사회(이사장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는 지난달 29일 정보통신부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KAIST와 통합 여부 등을 포함한 대학 중장기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차기 이사회에서 계속 논의키로 했다. 하지만, 차기 이사회 일정은 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대학 설립 당시부터 정치논리에 휘말려온 ICU는 ‘통합’과 ‘독자생존’이라는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학내 구성원 간 갈등만 심화돼 대학 발전에 치명적인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학 설립 주체인 정통부 역시 ICU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 데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통합 찬반 공방 가열=이날 이사회에서는 통합 찬반을 둘러싸고 이사진 간 공방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부 측 이사는 국회에서 정통부 장관의 ICU 이사장 겸직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며, 양교 간 통합 결정을 내려주지 않을 경우 이사장직 사퇴가 불가피하고 내년도 ICU 예산 지원도 어렵다는 뜻을 강력하게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이사들은 △양교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데다 △KAIST가 제시한 통합 후 발전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해 신뢰하기 어렵고 △양교가 지향하고 있는 교육 및 연구목표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통합에 반대하면서 정통부와 의견의 폭을 좁히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특정 정치인들이 양교 통합을 학교 측과 정통부에 강요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일부 정치인들을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예산 지원 불투명=이번 유보 결정으로 가장 답답한 것은 ICU 측이다. 통합이 아니라면 민영화라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러한 결정 자체가 유보된 만큼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도 예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국회가 지난해 KAIST와의 통합을 전제로 7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이미 김영선 의원이나 류근찬 의원 등은 이사회가 열리기 며칠 전 통합 없이는 내년도 예산을 줄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그간 의견 도출 과정에서 통합 및 통합반대 진영 간 반목과 불신이 학교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ICU 관계자는 “정부의 무소신과 책임없는 한건주의가 구성원 간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정통부와 정치권은 정치 공세를 중단하고, ICU를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키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전망=양교 통합 여부가 현 정권하에서는 결정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사회 일정이 두 번씩이나 연기된 데 이어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도 결정을 유보한 것은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짙다는 분석이다. 다만 여지는 있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양교 통합은 이사회에서 논의를 거쳐서 법률안 형태로 갖춰서 추진돼야 한다”며 “6개월 내 확정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연내 방안을 만들겠다”고 발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이사회에서는 이사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차기 이사회를 통해 통합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장 내년도 예산 확보가 불투명한 ICU 측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학교 측은 △성적 비우수자로부터 등록금 징수 △오만·카타르 등에 교육정책 수출 △대전 화암동 교지 매각 및 서울캠퍼스 매각을 통한 기금 확보 방안 등을 수립하고, 모자라는 학교 운영 재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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