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전쟁.’
코스닥 시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지난 1997년 개장 이후 한국 IT기업의 자금원 역할을 담당했던 코스닥 시장의 경우 ‘개인 투자자의 원맨쇼’가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가총액 기준, 기업 오너 포함 개인 투자자가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일반 개인만 고려해도 그 비중이 60%를 훌쩍 넘긴다.
유가증권(거래소)시장에서 개인 비중이 17%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코스닥=개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반면 연금, 해외 펀드 등 증시의 안정성을 의미하는 ‘기관 투자자 비중’은 9.44%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코스닥 시장을 움직이는 손, 개인=본지가 508개 코스닥 IT기업 5% 이상 대주주 성분을 조사한 결과 전체 1017개(명) 중 절반을 넘는 581개(명)가 개인주주였다. 개인주주에는 기업의 오너도 포함된다. 반면 국내 펀드의 경우 71개에 불과했으며 국민연금, 외국 자본(펀드), 은행 등을 포함해도 200여개 수준이었다. 특히, 연금과 은행이 투자한 회사의 경우 각각 6개, 18개 정도여서 ‘투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이는 지난 2006년 말 기준 유가증권 시장에 투자한 기관이 550개에 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이 수치는 코스닥 시장을 움직이는 진정한 주체가 개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증권연구원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닥의 경우 ‘창업주=오너=CEO’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기업이 많아 개인 투자자 비중이 거래소에 비해 높다. 이와 함께 낮은 주가도 자금 여력이 없는 개인이 손쉽게 주식을 살 수 있게 만든 주 원인이다”라고 적시했다.
◇기관 “코스닥 넌 아니야”=코스닥에서 기관·연금·외국인 등 이른바 ‘큰 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장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미하다. 지난 2000년 이후 많이 늘긴 했지만 지난해 현재 외국인 주주 비율(주식수 기준)의 경우 0.22%에 불과하고 한국 대표 연금인 국민연금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2개 정도. 공무원·사학 연금 등으로 대상을 확장해도 연금 투자 회사(5% 이상)는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지난해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금액은 약 20조원을 웃도는 수준이지만 이 중 코스닥 시장에 대한 투자비중은 7000억원 정도로 아주 낮다.
큰 손은 왜 코스닥을 외면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연금의 특성 상 변동성이 많은 코스닥 시장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코스닥 시장의 경우 외부 여건에 따른 주가 변동이 너무 높아 연금이 자금 투입을 꺼려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코스닥 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도 연금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업 정보를 한 눈에 알수 있는 증권사 종목 리포트의 경우 전체 940여개 코스닥 기업 중 100여개 정도만 매년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마저도 인터넷, 휴대폰 장비주 등 이른바 인기 종목에 집중돼 있다.
◇개인, 롤러코스터를 타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스닥 시장은 ‘테마에 속고 뉴스에 우는’ 이전투구장이 된 지 오래다. 경우에 따라 상하한가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업체도 거래소에 비해 최대 2배 가량 되는 등 증시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다. 단기 수익을 바라는 ‘개인의 말(주식) 갈아타기’ 속도가 KTX 수준이라면 펀드·연금 등 기관의 움직임은 통일호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들어 코스닥 지수가 810포인트까지 올라갔지만 국민연금만이 500억원 수준을 투자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 다른 펀드나 대형 연금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도 코스닥 시장 안정을 위해 연금 투자를 적극 권유하고 있지만 채권 등 고정 수입에 적응된 연금을 움직이긴 쉽지 않다. 이와 함께 외국 투자 자금도 우량 기업이 많은 거래소에 집중, 코스닥 시장엔 별 유입이 안 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 측은 “코스닥 시장의 문제점은 개인 및 친인척 지분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라며 “또 사명 변경, 대표 횡령 등 사건 사고도 많아 연금이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펀드, 국내 IT업종주 어디에 관심있나
소액주주의 성공적인 투자 패턴 중 하나는 기관의 움직임을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코스닥 IT업종에 대한 펀드 투자 비중이 상당히 낮은 상황에서도 펀드들의 움직임은 시장을 견인한 주도 업종에 투자했다는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투자 기관을 오너·소액·기업 등으로 분류해 업종 투자 성향을 분석한 결과 국내 펀드와 외국 펀드 모두 100여개 안팎의 기업에만 자본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IT업종 기업 508개 중 35%정도만이 펀드 투자를 받은 셈이다.
투자 기업 개수로 본 펀드 관심 업종은 반도체·부품 관련 기업이 포함된 업종을 비롯해 통신방송장비, 컴퓨터주변기기· SW, 재료 및 소재 등으로 조사됐다. 국내외 펀드가 공통적으로 투자를 가장 많이 한 업종은 반도체부품, 통신방송장비, 컴퓨터주변기기·SW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부품은 양 펀드 모두 21, 22개의 기업에 투자했고, 컴퓨터주변기기·SW 분야에도 각각 13, 18개 기업에 투자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밖에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연금의 경우 코스닥 등록 기업 규모가 작다는 이유 등이 작용해 원활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말 기준 코스닥 IT기업 중 단 다섯 곳만이 연금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에스에이티·엠텍비전·LG마이크론·YTN·KL-넷 등으로 이들은 모두 플러스 영업이익을 올렸다.
또 은행 등 금융기관의 경우 18개 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대부분은 반도체부품 업종에 대한 투자가 주를 차지했다.
◆ “돈 되는 기업을 잡아라”…코스닥 투자 외국펀드 중 인수 합병 목적 외국계 30% 달해
대부분 수십조원 ‘실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펀드는 침체에 빠진 증시를 살릴 수 있는 ‘구조대’로 불린다. 투자 기간도 평균 2년 이상이어서 데일리 트레이딩(단타 매매)을 일삼는 개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외국계 펀드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외국계 펀드 중 싼값에 기업(경영권)을 인수한 후 인위적 구조조정을 통해 차익을 남겨 되파는 헤지펀드 성격을 띤 ‘기업인수펀드’도 상당수 있다. 특히, 외국계 사모펀드(PEF)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목적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펀드가 많다는 것은 해당 증시가 M&A 이슈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한국 코스닥 시장도 외국계 펀드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헤르메스, 다비드사모 엠앤에이펀드, 오펜하이머펀드, 리먼브러더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국계 펀드 대부분이 국내에 투자하고 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코스닥 508 개 IT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펀드는 총 108개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펀드는 전체 108개 중 37개사에 달했고, 이중 10여개 기업은 이미 20%에서 많게는 50%까지의 지분이 펀드 소유로 귀속돼 있다. 펀드 투자를 받은 코스닥 IT기업 30% 이상이 경영권을 이미 펀드사로 넘겼거나 혹은 외국계 펀드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단일 펀드의 지분이 5% 대지만 2개 이상의 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들도 이후 변화를 주목할 만하다. T사의 경우 사모 펀드 성격의 지분이 20%에 달한다. 이 회사는 19%에 달하는 대주주 외에 특수관계인 지분 10% 이상을 확보,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국내 펀드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조합’ ‘인수증권투자사’ 형태가 사모 펀드의 성격을 나타낸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펀드는 90개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펀드는 24개였으며, 2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인 펀드는 4개에 그쳤다. 코스닥 등록 508개 IT기업 중 펀드가 최대 주주인 기업은 총 34개사로 조사됐다.
◆소액주주 의존도 높은 회사 영업이익 마이너스
소액주주의 비중이 높은 회사의 경영상태는 어떨까.
소액주주의 비중을 일정 구간별로 나눠 해당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평균을 낸 결과 소액주주의 비중이 60% 이상인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기준 소액주주 비중이 61∼80%인 102개 기업은 평균 영업이익이 -21억여원으로 나타났으며, 81∼100%에 해당되는 기업은 49억원 가량의 마이너스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결과는 소액주주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과 관계를 거꾸로 해석해야 한다. 실적이 사실상 저조한 기업을 기관이나 기업이 외면하고 있으며, 그 자리를 소액주주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에서 해당 기업의 수익률 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매출이나 영업이익 실적이 주가나 수익률에 직결된다고 할 때 ‘낮은 수익→기관투자 외면 ’이란 악순환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소액주주와 상관관계는 어떨까.
지난해 말 코스닥 IT기업 중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권 내에 드는 기업은 NHN을 비롯해 LG텔레콤·하나로텔레콤·메가스터디 등 12개 기업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IT 세부업종 내의 대표주라고 할 수 있으며, IT관련 업종이 여전히 코스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12개 기업의 평균 소액주주 비율은 47.68% 정도로 전체 평균에 약간 못 미친다. 12개 기업 중 소액주주 비중이 다소 높은 기업은 NHN·다음커뮤니케이션·휴맥스·CJ인터넷으로 인터넷 및 통신장비 관련주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소액주주 비중이 높다고는 하나 이들 기업의 소액주주들 상당부분은 외국인으로 알려져 있어, 국내 개미들이 재미를 봤을 것이란 등식은 성립되진 않는다.
영업이익 1000억원 이상인 상위 10대 IT기업의 경우 소액주주 구성비 평균은 46.14%로 나타났으며, 마이너스 영업이익이 발생한 하위 10대 기업의 경우 소액주주 평균비는 57.75%로 조사됐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담당 연구원은 “개인투자가들이 주가지수와 엇갈린 투자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소액투자가일수록 기관이나 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탐사기획팀=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 김규태·한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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