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나, 불썹

 #1.최근 문화관광부가 불법(온라인게임)서버·서비스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 서비스가 우리 게임산업을 병들게 하는 상황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미다. 올해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산업 외형은 약 9조원. 불법서버로 고객이 잠식되는 통에 중국에서 받는 로열티까지 새나가 우리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불법서버는 오늘도 마약상처럼 한중 양국의 인터넷 게이머를 찾아 인터넷공간을 배회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부의 조치는 희망과 아쉬움이 엇갈린다. 이른바 ‘불썹’의 말을 빌려 보자.

 #2.나는 불법서버다. 불법 온라인게임 서버 또는 그 서비스가 내 정체다. 인터넷에서는 ‘공짜 게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란 의미에서 프리서버(free server), 시쳇말로 ‘불썹’이다. 정식 게임서버나 서비스를 ‘본썹’으로 부르는 걸 보면 딱 맞는 말이다. 나는 정확한 출생지와 생일을 모른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온라인게임에 맛들인 이후 세상에 나온 게 분명하다. 리니지2·미르의 전설2·라그나로크·뮤 등을 나 같은 불썹이 서비스한다. 내 존재는 2004년 전후로 한국 언론에도 알려졌다. 내 주인 중에는 중국인도 있고 한국인도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에서‘강철연대’라는 이름의 내 동료를 적발한 정도가 고작, 단속은 곧 시들해졌다. 내가 통하는 걸 보면 나와 불법 게이머 간 친화력도 꽤 괜찮은 편이다. 기존 게임에 식상한 게이머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험치가 100배나 높고 화폐 또한 100배까지 제공되니 완행기차를 타다 롤러코스터로 갈아 탄 느낌일 게다. 일부 불썹 이용자, 심지어 한국게임 서비스로 큰 중국 샨다의 사장은 불썹 횡행의 원인을 게임업체의 불성실한 업그레이드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사실 난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한국정부가 나에게 철퇴를 내린다는 소식에 다시 기억났다. 어쨌든 한국포털에는 친절하게도 ‘xx30, 하자70서버’ ‘x젤서버’ ‘x하자 서버’ 등 친구의 주소가 떠 있다. 내 주인은 법도가 있다. 이용자에게 ‘처음 본 유저라도 반가운 인사를 하자’ ‘ 버그· 스피드핵 등을 하지 말자’ ‘유령회원 하지 말자’ ‘사자후 도배하지 말자’ 등 나름대로 질서라는 것을 갖고 있다.

 최근 궁금증이 생겼다. 내 사촌격인 음악서비스 불썹들이 이미 한국의 음반산업을 초토화시킨 것을 봤기에 한국 정부와 게임산업계의 고민과 최근 한국 정부 선언에 대한 게임업체의 안도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법에는 불썹 운영자의 적발근거나 처벌조항이 너무 막연하다. 중국 고등법원은 ‘정식 운영업체 허가 없이 불법서버를 온라인게임 사설서버로 설치하거나 1000명 이상 유저를 확보한 경우 범죄로 간주한다’는 등 상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문화부가 중국 및 국내 온라인 불법서버의 폐해에 눈을 뜬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그나마 다행이다. 정책당국자들에게 그 폐해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에 눈감고 ‘보려 하지 않았던 데’ 있다. 물론 마약 같은 그 불썹의 즐거움을 찾아다닌 게이머들에게도 책임있다. 하지만 지난달 초 인터넷에 올라온 더위 속에서 청량한 한줄기 비 같은 블로그도 보자. 지난달 5일 ‘허황된 사랑(Bombastic Love)’이라는 이름의 블로거가 올린 글은 이렇다.

 “이웃 추가하신 불법서버 플레이어분께. 저랑 서로 이웃 신청하셨던데 당장 취소해 주시죠. (중략) 블로그에 당당하게도 불법서버 홍보글 올렸던데 그런 사람과 그냥 이웃조차도 할 마음 없습니다. (중략) 라그 몇 년 하면서 단 한번도 불법서버에 발 들인 적 없는 저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기분이 나쁘군요. (중략) 본썹 플레이어가 불썹 플레이어를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없기에 이 사실을 알자마자 이 글을 올립니다. (중략) 다시 쓰자면 이웃 취소하고 아셔야 할 게 하나 있는데 본썹 플레이어는 불썹 플레이어가 블로그 이웃하는 게 전혀 반갑지 않답니다.”

 이재구· 콘텐츠팀장@전자신문,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