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는 ‘종막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최고 집권자의 정치적 공세는 국민과 언론 할 것 없이 볼모를 따로 가리지 않는다. 야권은 야권대로 대선 경쟁 외에 민생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경제는 경제대로 피폐하다. 지표상의 경제는 그런대로 굴러가는 듯 싶지만 실물경제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대선이 낀 해는 경기부양이 된다고 하는데 올해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푸념이 여기저기 새어 나온다. 이래저래 죽어 나는 건 국민과 기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기업의 2분기 실적이 미리 걱정된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도 주력인 반도체의 부진이 예상된다. 지난 1분기보다 공급 과잉과 판가 하락을 더욱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권가는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지난 5년 내 동분기 중 가장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지난해 바닥을 찍었던 LG전자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분기 실적의 발목을 잡았던 디스플레이 사업이 바닥을 쳤다는 징후가 감지되면서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한숨 돌린’ 의미는 추락했던 실적을 다소 만회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기업 모두 모듈 부품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트제품으로 실적을 방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부가가치 창출에서도 취약하다. 기초소재·부품이 기저를 이뤄주지 못하면 기반이 약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소재·부품은 비교적 경기영향을 덜 받고 건강하게 경제를 지켜주는 안전판과 같다. 그래서 더욱 걱정되는 국면이다.
걱정 가운데, 불현듯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북경발언’이 떠오른다. 지난 95년이니까, 어언 십수년이 넘어간다. ‘정치는 4류, 행정·관료체제는 3류, 기업은 2류….’ 누구나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었던 말이다. ‘바늘 끝’ 같은 말에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대부분 ‘맞다’고 수긍했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알면서 할 말은 했던 것 역시 정치가가 아닌 기업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의 ‘샌드위치론’ 역시 기업과 정치권, 한국사회에 던지고 싶은 경고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탄식섞인 현실을 담은 말이다. 차라리 지금 그 말이 오판에 의한 착각이기만을 바라고 싶다.
일반적으로 ‘4류의 정치’와 ‘2류의 기업’은 공식상 경쟁이 되지 않는다. 적을 만들어야 먹고 사는 부류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기업은 서로의 궤(軌)가 다르다. 또 ‘4류’가 노력한다고 하루아침에 ‘2류’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착의 고리로 눈총을 받아가며 서로에게 밥을 먹여줬지만, 결과는 사뭇 다른 ‘4류’와 ‘2류’이다. 그만큼 국민에게 다가간 감도에서, 이득을 갔다 준 이타(利他)의 측면에서 기업이 우위에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0년을 먹고 살 부품·소재 위주의 산업 구조조정마저도 4류가 아닌 2류의 기업에게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투명하게 심판받고, 올곧게 성장하는 것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3개월마다 성적표를 공개하고 경영내용을 발표한다. 주요한 기밀이 아닌 한 시장에 공개하고 주가로 결과를 수용한다. 때론 질책도 있고 회초리도 맞지만 피하거나 둘러대지 않는다. 정치판처럼 술수와 책략·미봉으로 땜질하려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때론 대통령의 말보다 기업 총수의 발언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또 국민이 정치보다 기업을 더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실적에 대한 단기적 실망이나 걱정보다는 믿음과 애정의 ‘긴 호흡’으로 기업을 바라봐야 한다. 말뿐인 1류보다는 1류가 없는 사회의 2류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기업에게 격려가 먼저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사회에 2류라도 있어 얼마나 큰 다행인가. 현실을 알고 대책에 불 밝히는 ‘2류의 기업(?)’이 있는 한 한국 경제는 희망이 있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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