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2부-일·유럽 로봇현장을 가다: 유럽편⑦프라운호퍼 IPA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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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명실공히 유럽의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다. 독일의 대표적 응용공학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 연구협회(FhG) 산하에서 로봇개발을 주도하는 생산기술자동화연구소(IPA)를 방문해 EU의 최신로봇 기술현황을 짚어봤다.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슈투트가르트는 명차 벤츠의 본사가 자리 잡은 공업도시로 유명하다. 이 곳에 위치한 생산기술자동화연구소(IPA)도 지역 경제의 활발한 R&D수요를 반영하듯 프라운호퍼 연구협회(FhG)가 거느린 57개 연구소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다. IPA의 정식 연구원만 250명, 파견된 학생수도 800명에 달한다. 로봇공학은 이 연구소가 힘을 기울이는 핵심분야로서 유럽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을 자랑한다.

◇중소기업 로봇= IPA는 지난 2005년부터 EU당국의 전폭적 지원하에 기존 산업용로봇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혁신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컨베이어 생산라인에서 혼자 정해진 일만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 대신에 인간과 공동작업에 촛점을 맞춘 새로운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인간과 협업하는 차세대 로봇장비를 중소기업(SME:Small and Medium sized Enterprises)의 제조공정을 자동화하는데 적합해 SME로봇이라고 불린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장비는 중소업체들이 쉽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높다. 특히 좁은 작업실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산업용 로봇장비를 새로운 제품규격에 맞춰 몇일씩 걸려 다시 프로그래밍하고 설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대규모 생산라인과 로봇전문인력을 함께 갖춘 대기업이 아니면 로봇자동화로 뚜렷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소제조업체들은 숙련된 기술자가 물러나면 생산이 타격을 받지만 완전한 로봇자동화로 전환하기도 어정쩡한 ‘자동화의 덫’에 걸려있다.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비숙련자도 쉽게 설치, 운용할 수 있고 △사람과 같은 작업공간에서 안전하게 협업이 가능하며 △가격대도 저렴한 꿈의 로봇 즉 SME로봇이 필요하다. EU당국은 IPA를 주관기관으로 오는 2009년까지 다양한 SME로봇을 상용화시켜 역내 22만여 중소제조업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계획이다. SME로봇사업에는 현재 ABB, 쿠카 등 유럽의 주요 로봇기업과 연구소 24개가 참여할 정도로 산업계 관심이 높다. 우선 ‘파워메이트’라 불리는 SME로봇의 작동시범을 보았다. 로봇팔에 중량 100kg이 넘는 무거운 자동차 부품이 매단 뒤에 손으로 살짝 당기자 마음먹은 위치로 스르르 옮겨진다. 이 정도면 커다란 기계부품도 마치 장난감처럼 쉽게 조립할 수 있다. 손끝의 힘을 몇십배 증폭시키는 도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SME로봇은 또한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전혀 몰라도 새로운 작업을 지시하기가 쉽다. 로봇팔에 용접, 연마도구등을 장착한 상태로 사람이 한번 작업을 하면 SME로봇은 작업순서와 궤적, 힘의 강도까지 그대로 따라한다. 또 작업도중에 로봇이 작업자와 부딪히지 않도록 다양한 안전센서와 감속기가 겹겹히 장착된다.

안내를 맡은 한 연구원은 “SME로봇은 그동안 자동화의 사각지역에 놓인 중소업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는데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생산현장의 상황변화에 수시로 대응할 수 있는 SME로봇의 융통성에는 중소업체보다 대기업이 먼저 눈독을 들이는 실정이다. 독일 BMW사의 경우 내년부터 차량제조에 SME로봇을 적용하기 위해 독일기술안전협회(TUV) 인증까지 추진하고 있다.

◇실버로봇= IPA의 로봇연구팀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로봇을 개발해왔다. 케어봇(Care-O-bot) Ⅱ시리즈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개량되어 온 노인용 실버로봇으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곧 3세대 버전이 선보일 케어봇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부축해 침대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손잡이를 잡고 실내서 이동하기, 바닥청소와 가구 옮기기까지 도와줄 수 있다. 6자유도의 로봇팔을 이용해 냉장고에서 원하는 음료수통을 끄집어내고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병원에 연락하는 등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 레이저 스캐너로 사람을 인식해 상대방과 명함을 교환하는 등 사회활동에도 도움을 준다. 또 케어봇이 도입되면 노인환자를 보호하는 간호사를 평균 30% 줄여서 인건비를 아끼고 서비스의 질은 높이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노인 환자들에게 시범적으로 사용하게 했더니 로봇성능에 만족도가 후하게 나와 연말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다.

◇안내 및 기타 로봇=IPA는 케어봇의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지난 2000년 3월 베를린의 통신박물관에 독특한 디자인의 안내로봇 3종을 배치했다. 연구소측은 지난 7년간 안내로봇들이 수많은 관람객과 박물관 내부를 돌아다니는 근무시간 도중에 멈춰선 사례가 한번도 없었다고 자랑한다. 독일사람들은 서비스 로봇을 만들 때 외형이나 성능은 물론 내구성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새삼 느꼈다. 연구실의 한쪽에서는 유명 화학기업에서 개발을 의뢰했다는 공장관리용 로봇을 상대로 파이프와 볼트, 블록 등 장애물을 피하는 모의 주행 테스트가 한창이다. 이 로봇은 사람 대신 화학공장의 비좁은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시설의 이상여부를 직접 모니터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IPA의 로봇개발은 수요처의 요구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독일의 한 육류가공업체가 몇년전 돼지고기에서 뼈를 발라내는 자동기계 개발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물컹한 고깃덩이에서 뼈만 제거하는 작업은 꽤 숙련된 손재주가 필요해 자동화가 쉽지 않다. IPA의 연구팀은 숱한 시도 끝에 가공육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로봇장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밖에 뇌 또는 척추를 0.1mm 정밀도로 시술하는 의료용 로봇도 민간업체에 기술이전을 완료하고 몇 달간에 걸친 생명공학실험을 자동화하는 특수 로봇장비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다.

◇인터뷰-마틴 헤겔레 IPA 서비스 로봇총괄.

“유럽의 서비스 로봇시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려면 아직도 몇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판단합니다.”

IPA의 서비스 로봇총괄인 마틴 헤겔레(45)는 많은 선행연구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의 서비스로봇 상용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로 유럽특유의 문화적 배경을 지적했다. 유럽사람들은 로봇기술의 확산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치게 높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서비스 로봇의 구입에 소극적이라는 설명이다. “로봇공학자인 저도 가끔 로봇의 미래가 희망(hope)인가 공포(horror)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로봇기술을 좋게만 보는 일본인과는 많은 거리감을 느낍니다.”

그는 또 서비스 로봇의 섣부른 출시보다 여러 기술적 문제를 완벽히 극복한 제품만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움직이는 로봇을 생활 속에 투입하는 것은 여러가지 위험요소를 내포하기 때문에 제조사로서 충분한 안전성 검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마틴 헤겔레는 “중국에서 제조한 룸바는 가격대비 성능은 뛰어나지만 독일 카처와 같은 최고급 청소로봇의 신뢰성과 성능에 매료되는 소비자도 있다”면서 어느 편이 유리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하는 서비스 로봇 아이템을 물어보니 아침마다 와이셔츠 다리는 일이 귀찮아서 다림질을 혼자서 하는 로봇부터 만들고 싶다는 대답이다. 그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진다면 스팀 다리미가 밀려나고 다림질 로봇이 집집마다 보급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슈투트가르트(독일)=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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