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카드나라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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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재테크의 정도를 걸어오던 김대박 과장(40)이 길을 잃었다. 김과장을 미아로 만든 곳은 요동치는 주식시장도,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펀드시장도 아닌 수상한 ‘카드 나라’였다.

 ◇체리피커의 유혹=평소 김과장의 지갑에는 현금 약간과 신용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 현금은 물론 카드도 많이 소지할 수록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난다고 여겼기 때문.

 하지만 얼마 전 ‘체리피커’(Cherry Picker)도 훌륭한 재테크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신 포도 대신 체리만 골라먹는다는 데서 유래한 체리피커는 여러 카드를 발급받은 후 현금서비스와 신용구매는 자제하면서 각종 할인서비스만 챙겨가는 실속파(카드사에게는 얌체족)를 말한다.

 실제로 주유할인을 받는 A카드, 패밀리레스토랑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B카드, 대형마트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C카드 등을 가지고 다닌다면 여느 금융상품 못지않은 수익을 얻을 것처럼 보였다.

 ◇할인서비스의 유혹=김과장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최근 인기카드를 검색해보니 ‘LG 스타일카드’ ‘현대카드V’ ‘우리V카드’ 등이 눈에 띄었다. 마침 신규 출시를 기념해 초년도 연회비는 사실상 무료였다. 현대카드 홈페이지에는 카드 하나만 잘 써도 연간 46만2000원의 할인혜택을 볼 수 있다는 안내도 곁들여 있었다.

 당장 세 카드를 발급받아 각종 할인혜택을 누리던 김과장. 문제는 가입자와 카드사간의 ‘허니문’ 기간인 1∼3개월이 지난 뒤 불거졌다. 조건없이 기본 혜택이 제공되던 기간이 지나자 몇몇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대형마트에서 3%씩 할인해주던 현대카드V로부터는 전월 사용실적이 3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서비스를 거절당했다. 쇼핑에 특화됐다는 LG 스타일-S카드는 전월 실적이 50만원을 넘어야 할인혜택을 누릴 수 있고 최고 리터당 80원씩 할인된다는 우리V카드의 주유할인 혜택은 전월 실적이 100만원을 웃돌아야 자격이 된다는 것.

 ◇체리피커의 허상=애초 카드를 신청할때 설명서에 큼지막하게 나온 주요 서비스만 보고 꼬리처럼 달려있는 유의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다시 살펴보니 각 혜택을 누리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기본 실적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다음부터라도 혜택을 누리려 고르게 카드를 사용해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 카드 실적을 채웠다 싶으면 다른 카드 실적이 모자라 정작 필요한 할인혜택을 받지 못했다. 조금 모자란 실적을 채우려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뒤늦게 체리피커의 허상을 알게 된 김과장에게 직장 동료가 한마디했다. “카드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요즘 카드사는 체리피커를 막기 위해 ‘퍼주기식’ 서비스를 지양하고 많이 써야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바꿨다더라.”

 그냥 수년 전부터 써오던 카드로 포인트나 꾸준히 쌓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김과장. 최고의 재테크는 돈을 버는 것에 앞서 합리적인 소비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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