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이슈 진단]UCC·온라인 커뮤니티·세컨드라이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는 신들을 모시는 언덕 ‘아크로폴리스’와 그 아래 펼쳐진 광장 ‘아고라’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아고라는 시민들이 모여 생필품을 교환하는 시장인 동시에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전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일종의 대중매체 구실을 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아고라에 나와 연설을 펼치고 경쟁자와 토론하며 전쟁을 선동하기도 했다.

아고라는 중세로 넘어와 인쇄혁명을 거치면서 책으로, 신문으로, 방송으로 차츰 진화했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원초적 구전 매체가 인터넷이라는 옷을 입고 부활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인터넷 아고라’의 등장이다.

특히 이미지 정치가 대세인 요즘 선거에서 인터넷은 강력한 여론 몰이 수단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이탈리아·미국 등 대통령 선거를 앞둔 세계 각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지지 유세, 홍보, 안티 캠페인이 대유행하고 있다. 인터넷 유권자들은 카메라와 캠코더·휴대폰·PC 등 첨단 정보통신 도구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여론을 생산하고 소비한다.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온라인커뮤니티, 3D 가상현실 사이트 등이 대표적인 인터넷 아고라들이다.

미국에서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손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속 독재자 ‘빅 브라더’로 묘사한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인터넷에 유포돼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다르게 투표하라(Vote Different)’라는 제목의 74초짜리 이 동영상은 또 다른 민주당 대권 주자 배럭 오바마 의원을 상징하는 알파벳 ‘O’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한 여성이 등장해 힐러리 의원이 연설하는 모습을 비춘 대형 스크린을 망치로 박살낸다. 다음 장면에는 “(내년) 1월 14일 민주당 프라이머리(당내 대권후보 경선)가 시작된다. 왜 2008년이 1984년과 다른 지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힐러리를 청산해야 할 낡은 정치의 수괴에 빗댄 안티캠페인이다.

무려 150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본 것으로 집계된 문제의 동영상은 ABC·CNN 등 주요 TV 채널을 통해 또 다시 퍼졌고 이 사건이 힐러리 클린턴의 대권 행보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는 관측이 무수히 제기됐다. 그러나, 동영상 저작자가 배럭 오바마 진영의 광고기획업체 직원임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 게 아니냐는 의혹과 질타가 오바마 의원에게로 쏟아져 저작자와 오바마 의원이 진화에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대권 주자 2명의 입지를 단숨에 흔들어 놓은 이 사건은 UCC로 대표되는 ‘웹2.0’이 대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ABC방송은 “이번 동영상 파문은 디지털 정치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각종 동영상이 UCC 사이트에 올라오고 ‘한 순간의 실수’를 포착한 장면은 유력했던 후보를 선거에서 탈락시키는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해 미 중간선거에서 버지니아주 선두를 달렸던 조지 앨런 공화당 상원의원은 경쟁후보 진영의 인도계 자원봉사자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동영상이 조회수 32만번 이상을 기록한 후 지지율이 추락해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콘래드 번스 몬타나주 상원의원 역시 농장법 공청회에서 졸고 있는 몇 초짜리 동영상 때문에 농민들의 표가 집단으로 이탈, 1%포인트 표차로 떨어졌다.

2008년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 같은 미 대선 예비주자들은 ‘미국판 싸이월드’로 불리우는 마이스페이스에 미니홈피를 개설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으며, 유세 활동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후보들은 마치 손오공이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들어 내듯이 3D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라이프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온라인 유세를 맡기고 있다.

몇십 억달러의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수 백만명의 유권자를 불러모으고 단 몇 분만에 짧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 아고라의 힘.

2008년 미 대선의 표심은 인터넷 아고라가 좌우하게 될 전망이다. 파괴적인 네거티브 공세보다는 창조적이고 건전한 기능을 발휘해 유권자들의 선택에 기여하길 기대할 뿐이다.

◆IT거물은 민주당을 선호한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 IT업계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많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 야후의 테리 시멜 CEO를 비롯해 e베이 출신의 스티브 웨스틀리,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 드림웍스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게펜, 로버슨 스티븐슨 투자은행의 로버슨 스티븐슨 창업자 등이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불투명한 당선 여부와 이념적 편향에 대한 우려로 실리콘밸리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신 젊은 피를 앞세운 민주당의 오바마 의원에게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 특히 스티브 웨스틀리와 데이비드 게펜, 샌디 로버슨 등은 오바마 의원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존 도어 등 앨 고어 전 부통령의 핵심 지지자들은 힐러리도 오바마도 아닌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어 고어 전 부통령의 향후 정치적 행보도 실리콘밸리에서 힐러리 의원의 지지도를 결정할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실리콘밸리에서 부상하고 있는 여성 경영진들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힐러리를 후원하는 든든한 세력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뉴스도 최근 힐러리 의원이 주최한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바바라 스트라이젠드와 제임스 브롤린 부부, 테리 시멜 야후 CEO, 로버트 달리 부부 등이 참석했다면서 오마바 의원의 행사에 비해 유명인 참석은 저조했지만 선거자금은 260만달러로 훨씬 많이 모금됐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대선, 아바타 대선 후보들 ‘대리전’

프랑스에서는 4월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권주자들이 인터넷에서 ‘분신(아바타)’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는 디스코를 추는 동영상 웹사이트(www.discosarko.com)를 운영한다. 이 사이트에 나오는 사르코지의 아바타에 마우스를 갖다 대고 누르면 우스꽝스런 개다리춤을 추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오는 존 트래볼타의 춤 같은 고난위 댄스를 선보인다. 전문가가 춤을 추는 동영상에 사르코지의 얼굴을 합성한 것인데, 딱딱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벗고 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또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와 사회당의 세골렌 루와얄 후보,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펭 후보, UDF의 프랑수와 바이루 후보 등 4명의 후보는 모두 3D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라이프(www.secondlife.com)’에 가상의 선거캠프를 두고 있다. 방문자 수 1위는 하루 평균 2만명이 다녀가는 루와얄 캠프. 루와얄은 동영상으로 직접 출현해 “많이들 오세요. 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라며 유권자들을 끌어모은다. 2위는 르펭 캠프(1만1000명), 3위는 사르코지 캠프(1만명), 4위는 바이루 캠프(7000명) 순이다. 불법이민자 즉각 추방, 사형제 부활, 유로 통용 중단 등 극우보수를 표방하는 국민전선 당수 르펭은 세컨드라이프 내 캠프가 출마 반대 폭력시위로 아수라장이 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란=미국 IT기업 린든 랩이 2003년 개설한 3차원 온라인 가상현실 사이트. 사용자가 아바타를 이용해 온라인 세계에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간다. 섬(독립공간)을 구입해 집을 짓고 친구를 사귀며 다양한 경험을 즐길 수 있다. 땅이나 건물·옷·가구를 사고파는데 가상화폐인 린든달러가 통용된다. 4월 현재 가입자수는 519만9296명, 하루 경제 규모는 미화로 203만9841달러에 이른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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