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국은행이 수상하다

 한국은행이 요즘 수상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IT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고 발표했다. IT가 ‘소득 없는 성장’의 요인이라고 했다. 논거는 이렇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2%에 달했지만 실질소득(GDI) 증가율은 3.4%에 그쳤다. 국제유가 상승과 실속 없는 IT산업 때문이다. IT산업은 92년 이후 무려 연평균 15.9%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우리나라 명목GDP의 10.9%, 수출의 34.8%를 차지한다. 산업의 중추다. 하지만 IT 제조업 5대 주력품목의 중간재 국산화율은 35%에 불과하다. 수출액의 35.9%가 부품소재 수입으로 빠져나간다. 단가도 빠르게 하락한다. 그래서 수출이 늘어도 소득이 늘지 않는다.

 한은은 2006년 국민계정 잠정치를 발표하며 주장을 뒤집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급격히 늘고 있다. 올 연말쯤에는 2만달러로 올라선다. (열흘 전 혹독하게 비판했던) IT산업이 주역이다. 지난해 IT산업 성장률은 13.3%였다. 실질GDP 성장률 5%의 2.6배가 넘는다. 2002년 26.3%에 불과했던 경제성장 기여율도 40%에 육박했다. IT산업의 GDP 비중도 매년 1%포인트씩 상승, 지난해에는 16.2%로 높아졌다.

 졸지에 IT산업은 소득 없는 성장의 장본인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한은의 이율배반적인 입장 번복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해하기 힘든만큼 나름대로 추론해보았다. 아마 한은은 ‘속빈 강정’으로 질타받기 쉬운 국민계정 잠정치 발표를 앞두고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때마침 9일 이건희 회장이 이례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발언을 했다. 5∼6년 후 대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이때다 싶어 미리 ‘IT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며 바람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갔다. 재계에서 경제위기론이 불거졌다. 난처해진 정부는 확산되는 경제위기론 제동에 나섰다. 한은은 난처해졌다. 국민계정 발표에서 IT 위기, 경제위기를 뒤로 슬쩍 빼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로 치장했다.

 하지만 숫자로 드러나는 통계치는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은 ‘허울뿐인 성장’이라고 폄하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5.0%였지만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2만달러를 앞둘 정도로 증가한 1인당 국민총소득은 7%에 달한 ‘환율 하락’ 덕이 컸다. 더욱 기막힌 것은 언론이 일제히 한은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통계에서 IT산업이 여전히 성장동력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궁색해진 한은으로서는 ‘IT가 성장동력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우려했을 뿐’이라는 게 할 수 있는 변명의 전부였다.

 한은의 이율배반은 또 있다. 한은은 ‘선진국에 비해 서비스 부문에서 IT인프라 활용이 너무 부진해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놓고 27일에는 IT의 취업유발계수가 타 분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앞뒤가 안 맞다. IT인프라 활용이 앞설수록 성장기여도가 높아진다. 취업유발계수가 떨어지는 것은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국민계정상 우리나라 IT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40%다. ‘황의 법칙’이 말해주듯 IT제품은 가격이 1년에 절반 정도로 떨어지는 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수입유발효과는 크지만 경제성장 기여율이 40%에 이른다. 한은은 우리나라 경제지킴이다. 서릿발 같은 한은의 명쾌한 입장과 합리적인 분석을 듣고 싶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