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업계가 반도체관련 지재권인 ‘반도체 배치설계에 관한 법’을 강화하자고 제안하고 나서 세계반도체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아직 각 국에 공식문건이 전달된 것은 아니지만 각 국과의 FTA협상에서 지적재산권문제를 핵심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대만·유럽 등은 협회를 중심으로 입장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협회는 최근 세계반도체회의(WSC) 총회를 위한 안건준비 실무자 회의에서, 전세계적으로 등록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반도체배치설계 관련 보호법률’을 수정해 음반이나 서적처럼 별도 등록절차없이 칩이 시장에 공개되는 순간 그 권리가 인정되도록 해야한다는 의견을 각국 반도체유관협회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반도체협회는 “반도체배치·설계 도면을 등록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세계 각국이 평균 1∼2년이 소요되며 등록도 국가별로 따로 해야하는데, 이는 기술 흐름이 빠른 반도체산업의 특성과 맞지 않다”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저작권처럼 보호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내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주장대로 반도체 배치설계권을 출판물 저작권처럼 관리하게 되면 관련 소송이 제기될 때마다 누가 먼저 칩을 출시했는 지 여부 등을 광범위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관련 비용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국내 특허청 관계자는 “아직 미국 반도체업계 차원에서 의견을 제시한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각국의 특허기관에는 이와 관련된 어떤 제안도 없었기 때문에 아직은 미국 측 의도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며 공식입장을 유보하면서도 “하지만 등록주의를 수정할 경우 상당한 혼란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각국 반도체협회는 일단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면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반도체협회 동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각 국 입장은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기존과 마찬가지로 등록을 마친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권리를 따져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 측이 요구하는 포괄적 방식보다 반도체산업의 실정을 고려해 각 국 특허등록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반도체 배치설계에 관한 법이란
특허권으로도, 저작권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회로배치 설계부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법이다. 지난 89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성립시킨 ‘집적회로에 관한 지적재산보호조약’이 그 근거다. 한국에서는 지난 93년 ‘반도체집적회로의 배치설계에 관한 법률’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시행되고 있다.
반도체집적회로의 제조과정은 통상적으로 ‘특정기능을 위한 시스템설계→기능실현의 논리회로설계→논리실현의 전자회로 설계→회로의 공간적 배치설계→제조공정→시험검사’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 가운데 회로의 공간적 배치설계는 기술보다는 도면에 가까워 특허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반도체배치설계권의 일차적인 보호대상은 배치설계이나, 실질적인 보호대상이 배치설계를 이용해 제조된 반도체칩, 반도체칩이 내장된 최종제품까지 확장되기 때문에 파괴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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