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사토 겐이치로, 그?獨?배운 것

 1년 반이 지났을까…. 그를 만난 건 우여곡절 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당시도 불황의 한가운데였다. 모든 기업이 회생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회생의 모델, 강건한 기업의 사례에서 배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던 시기였다. 그때 눈에 띈 것이 ‘교토식 경영’이었다. ‘10년 불황’ 일본을 버티는 강건한 기업들이 일본의 전통도시 교토에 모여 있었다.

 일본의 대표 부품업체 로옴의 창업주 사토 겐이치로(佐藤硏一郞). 그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자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남 이전에 통과해야 할 관문이 많았다. 사전교육이랄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정의 시험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마치 무림고수가 제자를 고르기 위한 입문시험과 같았다. 짜증이 나기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묵묵히 견뎠다.

 어렵사리 만든 그와의 첫 대면. 까다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의 나이는 일흔 중반을 넘겼음에도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소박하지만 단정한 모습이 오히려 강렬했다. 가끔은 동네 아저씨와 같은 정감을 풍기기도 했다. 지칠 만한 장시간에도 흐트러짐 없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했다.

 여러 질문을 했지만 그의 명제는 또렷했다.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째가 신뢰다. “뒤에서 즐거움을 얻는 기업이고 싶다. 전면에 나서서 사랑받는 기업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제품을 고객이 사용해 즐거움을 얻는 순간 우리도 즐거움을 얻는다.” 자기합리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히 간파하고 있다. 부품 없는 완성품은 없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을 지켜야 사회 안전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그는 먼저 고객으로부터의 신뢰성을 강조한다.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목표’가 전제돼야 한다. 백년을 침대에 누워 사는 것보다 50년을 발로 뛰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살아 있음’의 철학이 그의 기업에 녹아 있다.

 두 번째의 주장은 전문성이다. “남의 집에 신발을 벗지 않은 채 들어가는 무례함을 느꼈다. 돈을 좇아가면서 고객을 잊지 않았는지 반성부터 먼저 든다.” 부품업체로 세트사업의 영역확장에 그는 완강하게 가로저었다. 사업영역 확장에 대해 무례함까지 느낀다는 것은 분명 ‘오버’다. 사업도 규모의 경제인데, 그의 주장이 옳다고만 볼 수 없다. 지나칠 만큼 외골수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 언제나 잘하는 것에 승부를 건다. 그의 신념이다.

 그의 코드는 단순하다. 돈만 좇는 ‘죽은 목표’는 오래갈 수 없다. 사랑을 갈구하기 이전에 사랑받을 일을 하자는 다소 유치한 에로티시즘(?)이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 우물을 깊게 파자는 것이다. 깊은 우물 밑에서 고객은 무한대의 성의를 베풀고 사랑을 전한다. 그렇게 포장된 그의 생각에는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였다. 음악감상에 심취해 오디오를 알게 됐고 부품을 알게 됐다. 더 좋은 질의 음악감상을 갈구하다 기업가가 됐다. 돈과 같은 무게로 자신의 제품을 사랑한다. 적어도 기자가 본 그는 틀림없다.

 10년 장기불황에서 일본 경제를 이끌고 다시 제조업으로 발돋움하는 일본의 뒤에 사토 사장과 같은 기업가들이 있었다. 어려울 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기업들이 존경받는 이유다. 그래서 사토 사장은 기업가로서뿐만 아니라 애국자로서도 교토지역의 유력인사로 존경받는다.

 그는 지금도 해가 바뀌면 연하장을 보낸다. 친필로 곱게 적어 정성스레 보내온다. 한 번 만난 기자 역시 그의 고객인가 보다. 유독 황사에 시달리는 봄날 그가 생각난다. 그날 어려운 만남만큼의 환대, 그 이상의 배움을 얻었다. 그는 한국기업의 메신저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