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 다시 쓰나.’
KTF가 3세대(G) 영상통화 전국서비스를 계기로 가입자인증모듈(USIM)의 잠금장치(Lock)를 해제하기로 함에 따라 휴대폰 시장의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휴대폰 제조사들은 KTF의 결정이 USIM 개방에 줄곧 반대해왔던 SK텔레콤의 동참을 이끌어내 본격화할 수 있을지, 사업자 중심의 국내 휴대폰 유통 시장이 유럽처럼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소구하는 ‘오픈 마켓’으로 전환하는 물꼬가 틀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시장 규모 줄어들까” 우려=삼성전자와 LG전자는 KTF의 결정에 대해 “SK텔레콤도 있고 제조사가 나서서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공식 견해 표명을 회피했다. 제조업체들은 이번 KTF의 결정이 3G 조기 활성화라는 대의명분도 있지만 경쟁사인 SK텔레콤의 2G 가입자를 뺏고 기존 시장질서를 흔들어 3G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 KTF의 편을 들어 자충수를 두면 국내 이통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SK텔레콤과 10년이 넘게 공들여온 전략적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눈치도 작용했다.
제조업체들은 무엇보다도 시장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USIM 카드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단말기 재활용도가 높아지고 나아가 사업자 이동도 손쉬워져 그동안 시장 성장의 결정적 요인이 됐던 사업자들의 보조금 마케팅이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내수 휴대폰 시장 규모는 월 160만대로 꾸준한 신규 및 교체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사업자 간섭 벗어날까” 기대=시장 규모 축소를 걱정하는 제조업체들은 이통사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동안 SK텔레콤용·KTF용·LG텔레콤용 등으로 구분해 단말기를 제조하고, 사업자 정책에 따라 단말기 라인업 등 모든 것을 결정했던 주도권이 제조사로 상당수 넘어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SIM 카드를 기반으로 오픈 마켓이 활성화돼 있는 EU는 제조사들이 한 가지 제품을 다수 국가와 사업자에 공통으로 제공하는 한편, 전략적 유통업체와 함께 가격 책정 등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LG전자가 EU 지역을 중심으로 누적 800만대를 판매한 초콜릿폰의 경우 차별화된 디자인과 브랜드로 오픈 마켓에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다.
그동안 사업자 위주 시장에서 보조금과 장려금 등의 마케팅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던 팬택과 VK 등 중견업체들은 새로운 유통체계가 구축되면 고객과 직접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휴대폰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결국 USIM 개방은 고객들에게는 선택권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사업자와 제조사, 1만5000여개의 대리점·판매점 등은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경쟁 접점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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