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IT기업 한국 진출 40년 `빛과 그림자`](3부.끝)이젠 `세일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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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IT기업 한국지사들에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역할 변화가 강조되고 있다. 김용대 한국CA 사장(가운데)과 한국CA 직원들이 21세기형 한국지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양적 성장의 시기는 끝났다. 이제 질적 승부에 도전하라.’

 컴퓨팅 영역의 전직 지사장들은 일단 과거와 같은 ‘좋은 시절’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80·90년대 보였던 급격한 기울기의 성장곡선이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전직 지사장들은 양이 아닌 질적인 측면의 변화, 그에 따른 지사의 역할 변화를 강조한다.

 과거에는 신기술 보급 그 자체가 관심사였지만 이제부터는 발전한 국내 IT산업을 바탕으로 기술협력에 적극 나설 때라는 주장이다. 1990∼2005년 사이 지사를 이끌었던 6인의 전직 지사장이 말하는 ‘21세기형 지사(장) 역할’을 들어본다.

 ◇IT코리아의 무엇을 팔 것인가=그간의 고민이 우리 시장에 본사의 제품을 파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IT코리아가 갖고 있는 강점, 그것을 찾아내 글로벌 무대에 파는 관점이 중요하다. 다국적 IT기업과 국내 기업의 ‘윈윈’ 모델을 찾는 일이야말로 21세기 현지 법인장의 중요한 역할론이라는 것.

 유승삼 전 한국MS 사장은 “(이제는)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들여다볼 때”라고 말한다. MS 메신저 아바타는 역수출할 기회고, 온라인 게임이나 통신 서버 운용기술은 오히려 우리가 자신감을 가질 만한 품목이라고 강조한다. 안경수 후지쯔 본사 경영집행역은 “한국 기업의 가치를 재정립해 본사에 홍보(PR)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순만 전 한국사이베이스 사장도 “패키지를 국내 시장에 파는 역할보다는 각 영역에서 공집합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신규 비즈니스에서 기회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사와도 협상력이 필요=성공의 경험을 가진 지사장들은 본사를 합리적으로 설득해내는 협상력을 재차 강조한다. 한국 시장의 본사 매출 기여도는 평균 1∼2%지만 ‘전략적 요지’로서 한국의 위상을 전제로 한 협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신재철 전 한국IBM 사장은 “다국적 IT기업 지사는 본사의 조직이지만 파트너십 모델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내 IT인프라가 훌륭한만큼 새로운 컨버전스 기술을 우리 시장에서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그 기회를 통해 본사가 한국 시장에 적극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 내는 협상력이 중요하다는 것. 안경수 경영집행역은 “주변국과 상대적 위상 비교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며 “한국지사도 우리나라의 리소스를 적극 활용해 글로벌 기업에 메리트를 안기고 그를 통해 뭔가 얻어내려는 협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홍 전 사장은 “지사장 스스로 각오하는 철학과 영업력을 전제로 한 협상력이 없다면 사실상 지사장은 영업담당 매니저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매니저로서의 경영 마인드가 중요=김원국 전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사장은 “글로벌 기업은 본사 차원의 큰 사업계획이 수립돼 있다. 지사장은 회사의 사업전략을 잘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 이를 현지에 잘 반영하려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CEO는 아니지만 지역 매니저로서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인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유 전 사장은 한발 더 나간다. “본인이 CEO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일을 하지 못하고, 실제 기여한 업적도 미미하다. 야전 사령관이든 관리형이든 자기에게 맞는 접근법으로 현지법인장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정형문 전 한국EMC 사장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기법·프로세스·정책을 배워 한국기업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역시 경영자 마인드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탐사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