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한자 성(姓)을 한글로 표기하는 데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호적전산화사업을 확대,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호적을 일차로 전산화할 때 한자 성을 한글로 전환하면서 두음법칙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적에는 그동안 류씨였던 사람은 유씨로, 라씨 성을 사용해온 사람은 나씨로 이름이 자연스럽게 변경된다. 기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은 물론이고 다른 공문서와 이름이 달라지는 셈이다. 당연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올해 1223억원을 투입, 호적 및 신분등록 업무 전산화 확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고 추진하는 게 순리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호적전산화사업이 확대된다면 국민의 혼란은 가중된다. 나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이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데 따르는 시간과 국민의 불편 또한 더욱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이로 인해 더 많은 국민의 피해가 예상된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호적 전산화 1단계가 끝난 2002년 당시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례도 있다. 특히 정부가 호적 시스템을 다른 공공 시스템과 연동해 나가면서 호적 전산화로 인해 여권 및 주민등록의 ‘직권 정정’도 잇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호적전산화 대상이 확대된다면 그만큼 피해는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한글맞춤법에 따라 한글 성을 표기한다는 호적예규에 의해 호적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대법원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또 아직까지 호적예규에 의해 한글 성을 바꾸는 것이 위헌인지 최종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호적전산화가 시급한 대법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사업을 추진할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사업의 목적이다. 호적전산화는 단순히 행정의 편의가 아닌 국민의 편의를 목표로 두고 추진해야 한다. 호적전산화로 인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면 당연히 이를 해결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게 올바른 결정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써온 성을 전산화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꿔야 한다면 오히려 전산화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만 불러올 수 있다.
해결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보다 10여년 이상 먼저 시행되고 있는 주민등록전산화에서는 ‘류’ ‘라’씨 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등은 물론이고 금융기관에서도 두음법칙과 상관없이 한글 성을 쓰고 있다면 이미 이 같은 관례가 사회적으로 인정됐음을 뜻한다. 그렇다고 호적전산화사업을 확대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호적전산화는 당연히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피해와 불편을 겪고 있다면 이를 먼저 해결하는 게 정부의 자세다. 지금이라도 호적전산화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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