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표준화정책은 국가역량 결집 도구

올해부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회원국이 되면서 유럽연합은 4억8700만 인구의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다양한 언어와 문화, 법과 제도가 다른 회원국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수단이 필요하게 됐다. 유럽연합은 이를 표준화에서 찾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new approach)을 도입해 회원국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핵심 내용을 지침(directive)으로 정하고 그 시행 수단을 표준으로 정해 활용하고 있다. 표준이 유럽연합을 하나로 묶는 사회통합의 핵심 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표준은 국제무역정책의 핵심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세계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1995년 무역상기술장벽(TBT) 협정을 만들고 국제표준이 존재할 경우에는 회원국이 또 다른 표준을 제정해 무역상기술장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전문기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계 교역의 약 80%가 표준 영향 아래 있고, 국가 GDP의 1% 향상과 기업매출의 15% 향상에 표준이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외국의 기술장벽으로 인해 우리 기업의 무역이 지장을 받지 않도록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TBT분과를 두고 관련 전문가와 기업의 의견을 수렴, 국제무역 규범에 적극 대응하는 표준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표준은 국제무역의 새 규범으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국제규범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계 시장이 단일화되고 있으나 이에 걸맞은 법·제도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지침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하려는 노력이 국제표준화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반부패에 대한 지침과 아동 노동이나 노동 차별화를 금지하는 지침, 환경과 윤리문제를 다루는 지침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관련기업과 연구소·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우리 기업경영의 지침들이 국제표준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초안을 작성, 제출함과 동시에 국제표준 제정 동향에도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

　표준은 기업의 세계 시장 경쟁력 확보 전략에도 새로운 핵심 요소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표준이 특허·디자인과 함께 기술혁신의 소프트 인프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신호압축(MPEG)기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업이 개발한 특허기술을 국제 표준화한 경우 이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기업에서 특허료를 받을 수 있어 그만큼 기업경영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기술개발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연구개발 기획 단계에서부터 표준화를 고려한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연구개발 결과를 특허기술과 함께 국제 표준화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전자제품과 자동차, 정보통신 제품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도 바로 표준을 활용한 품질경영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관련제품의 품질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표준은 품질향상뿐만 아니라 공정 혁신 유도로 기업의 능률과 효율을 향상시켜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하고, 정보를 제공해 기업의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CDMA 방식의 휴대폰이나 디지털TV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표준을 조기에 채택해 기술혁신을 통한 상품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계 표준을 하나로 통일해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던 IMT2000 표준이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기식과 유럽 중심의 비동기식으로 양분된 것도 표준이 곧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이제 표준이 산업뿐만 아니라 무역과 사회 통합, 기술혁신의 소프트 인프라와 국민생활의 편의를 제공하는 국제 규범으로서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 되고 있다. 세계 시장선점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국제규범에 걸맞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민 모두가 표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표준 활용을 통한 국가역량을 최대화해야 할 것이다.

◆최갑홍 기술표준원장 kaphong@moci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