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품 제작에 6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공정을 중국 A사에서 5000만원에 제시해왔습니다. 거의 공짜나 다름 없지요. 이 소식을 듣고 중국 B사에서는 시제품 제작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벤처 반도체설계전문(팹리스) 업체의 한 CEO는 최근 신제품 생산을 위해 가격을 알아보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GSMC, SMIC, 차터드, UMC, 아트멜 등 해외 반도체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저렴한 시제품 제작 비용’을 제시하며 국내 팹리스 업체들에게 제휴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새로운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마스크로 회로 본을 뜨게 되는데, 이때 공정 셋팅부터 마스크를 뜨는 과정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시제품 제작비용이다. 시제품 제작 비용은 보통 0.18 공정은 2억∼3억원 가량, 0.13 공정은 6억∼8억원 가량, 90나노 공정의 경우 10억원이 훌쩍 넘어간다. 일부 해외 파운드리 업체들은 이것에 비해 1/10도 채 안되는 가격까지 제시하며 국내 팹리스 업체 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왜 파격가 제시하나=파운드리 업체들이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파격적인 시제품 제작가’를 제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대량생산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며, 소위 뜰만한 중소 벤처기업 제품이 완전한 제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시제품 생산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사 파운드리에 없는 새로운 공정을 셋팅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상황은 파운드리 업체들의 공장가동률이 낮아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TSMC를 비롯한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이 100%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였지만, 하반기부터는 팹리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가 늘면서 생산율이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의 공장가동률이 80%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TSMC 관계자는 “파운드리 업체들의 가동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더해 파운드리 업체들이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팹리스, 호재지만 선택에는 주의를=파운드리 업체들의 가격경쟁은 팹리스 업체들에게는 신제품 개발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파운드리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발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마스크 비용(시제품 제작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벤처 팹리스의 생산 담당 임원은 “세계적인 파운드리 업체들이 과거에는 규모가 큰 팹리스 업체들을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펼쳤으나, 이제 소규모 벤처기업까지 관심을 갖고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시제품 제작 비용이나 기술지원등이 활발해 팹리스 업체들에게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격가에 현혹돼 무턱대고 파운드리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부담도 따른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처음 시작하는 공정의 경우 불안정한 공정 때문에 원하는 품질과 사양의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개발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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