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나를 가다]1부-달리는 코끼리, 인도③IT와 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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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IT 두뇌의 요람으로 불리며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숱한 인재를 길러낸 7개 IIT 가운데 IIT델리의 도서관 내부. 명성에 비해 어두침침하고 낡은 시설이 인재 유출과 R&D 역량 부족으로 고민하는 IIT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도 인재의 산실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인도공대(IIT:Indian Institutes of Technology)의 성공 DNA는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1월 12일 델리 시내에 위치한 IIT 델리를 찾았다. IIT 델리는 IIT카라푸르·IIT뭄바이·IIT마드라스 등 인도 전역 7개의 IIT 중 하나. 황토색의 커다란 건물들로 이뤄진 이곳 델리 캠퍼스를 거쳐간 IT·경영계의 간판스타는 비노드 코슬라 선마이크로 공동창업자, 라자 굽타 매킨지컨설팅 회장, 라구람 라잔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등 화려한 면면이다.

 전 세계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온 IIT는 이미 국내에도 보도돼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1951년 인도 초대수상인 저와헐랄 네루가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모델로 기초를 만든 뒤 흔들리지 않는 자율과 일관성으로 훗날 미국 실리콘밸리를 점령한 숱한 인재들을 키워낸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IIT가 실체보다 과대평가돼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하위카스트 입학쿼터를 늘리기로 하면서 학력저하 논란도 뜨겁다.

 IIT를 방문해서 가장 알고 싶은 점은 인도 IT와 IIT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IIT의 경쟁력은 ‘실용과 자율, 그리고 치열한 경쟁시스템’으로 요약됐다.

 수렌드라 프라사드 총장이 인도 남부로 급한 출장을 떠나 인터뷰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D P 코타리 전 총장과 동문·국제협력 담당 학장인 마노즈 다타교수 미팅을 가졌다. 캠퍼스를 오가는 재학생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코타리 전 총장은 실용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강조했다. 오직 인재양성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인상적이었다. 3과목 시험만으로 학생을 뽑는 절차와 자율적인 커리큘럼 구성도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에 충실하게 구성했다. “인도 전역의 인재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갖춰져 있죠. 여기에 실용적인 교육을 더해 가장 우수한(Creamy level) 인재를 키워냅니다. 인도와 세계에 공헌하는 인재 양성은 우리 학교의 최대 목표입니다.”

 자율성은 총장의 권한과 재정을 보장하는 데서 나온다. 코타리 전총장에 따르면 IIT는 이사회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운영되지만 사실상의 권한은 총장과 각 분야 학장들이 쥐고 있다. 이사회는 대외적인 일에 주력하고 예산, 교육 등의 안살림은 총장과 학장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형태다. 10억 루피(230억원) 규모의 학교 예산을 정부가 전액 지원해주지만 재정 운영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예산 증액도 손쉽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은 엄격한 학력관리로 만들어낸다. IIT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에 항상 노출돼 있다. 입학을 위해 사교육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뒤 IIT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경우도 많다. 인도 전역에서 똑똑하다는 인재 중 수십만명이 응시해 2100여명의 합격자만 뽑는 구조다.

 캠퍼스에서 만난 수학·컴퓨터 전공 2학년생 누푸르(19)는 “인도 전국의 수재 20만명이 지원한 시험에서 2100명 안에 들어 학교에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IT기업 취업을 원하는 그녀는 학교에서 유급당하지 않으려면 해마다 치르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인도의 대학들은 전반적으로 학비가 저렴한 대신 엄격한 시험으로 중간 탈락자를 만들어내는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수험표까지 배부해 치르는 이 시험은 인도 학생의 30%, 외국인 유학생의 70%가 탈락할 정도로 엄격하다.

 하지만 IT 붐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IIT가 앞으로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정부가 재정 전액을 지원해 ‘돈 걱정’ 없다고는 해도 ‘세계 일류’ 하버드대의 한 해 예산 2조8000억원, MIT의 기부금 자산 7조원에 비하면 예산과 기부금 규모는 보잘것없었다. 기업투자를 유치해 무한경쟁에 나선 미국 대학과 경쟁할 도전정신도 아직은 부족해 보였다. 이 때문인지 도서관 등의 시설도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 낡은 모습이었다. 우수한 졸업생들이 모두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뛰어난 교수를 임용, 지식을 재생산하는 구조도 취약하다고 했다. 타임지가 평가한 IIT의 2006년 랭킹은 세계 57위. 63위를 차지한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동문 및 국제협력 분야 학장을 맡고 있는 마노즈 다타 교수를 만나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다타교수는 IIT의 자체 리서치 능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IIT의 경쟁력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졸업생들로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눈여겨볼 것은 그들이 이곳(IIT)에서가 아니라 이곳을 떠난 뒤 다른 곳(실리콘밸리)에서 업적을 쌓았다는 겁니다. IIT가 배출한 인재의 수준에 비해 자체 연구 능력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수한 학생이 연봉 수준이 낮은 교수로 남지 않으려 합니다. 시설도 떨어집니다. IIT가 MIT, 스탠퍼드, 칼텍과 경쟁하려면 리서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타 교수의 진단은 솔직한 자기 평가인 동시에 IIT의 핵심 경쟁력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탁월한 수리능력과 영어구사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해 놓았으니 실리콘밸리든 어디든 가져다 놓아도 100% 이상의 역량을 발휘해 낸다는 것이다.

 다타 교수의 진단은 또 IIT가 우수한 인재뿐 아니라 우수한 R&D역량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온몸으로 인도와 맞닥뜨려야 할 우리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었다.

 

◆인터뷰-마노즈 다타 동문·국제협력 담당 학장

 “IIT의 명성은 졸업생들 때문이지 리서치 역량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마노즈 다타 동문·국제협력 담당 학장(51)은 IIT가 MIT·스탠퍼드 등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IIT는 과기부 소속이 아닌 교육부 소속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R&D가 아닌 인재양성이 목표이기 때문에 50년간 여기에만 주력해왔다”고 했다.

 다타 교수는 “IIT는 정부에 소속된 학교기 때문에 다른 나라 학교처럼 학교 발전자금을 모으는 데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비노드 코스라 선마이크로 창업자가 500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제외하고 동문들의 기여도 많지 않다”며 “재원이 더 필요하면 정부에 요구하면 해결되는 구조”라고 했다.

 “IT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IIT가 그 영향으로 리더 위치에 서게 된 것도 오래되지 않은 일이죠. 이곳 학생들에게는 IIT에서 좋은 업적을 남기는 역할 모델이 없습니다. 다들 높은 연봉의 일자리만을 원합니다. 인재 유출로 역량이 쌓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맞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MIT·스탠퍼드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타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졸업생들이 다른 나라에 가 좋은 업적을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만들 수 있게 하려 한다. 제도를 개선해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서치 역량과 기업가정신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다타 교수는 한국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한국의 IT 교육기관과 서로 도와 조인트 리서치를 벌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언어 장벽이 실질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성장의 몸살 앓는 IIT

 인도 IT 성공신화의 아이콘인 인도공대(IIT)는 성공의 이면에서 과도기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맞부딪치고 있는 인도의 현주소가 IIT를 둘러싼 갈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IIT 델리를 방문하기 며칠 전 현지TV(NDTV)가 방영한 토론회는 IIT를 둘러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IIT 반대파는 100%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 30%가 외국으로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을 비판했다. 높은 연봉을 받으러 외국으로 떠나려는 학생들을 위해 굳이 정부가 전액을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15%인 하위 카스트 입학 쿼터를 27%로 올리는 문제도 IIT를 둘러싼 논란거리다. 하위 카스트 지지기반이 큰 여당이 각 지역의 공무원 쿼터와 함께 IIT의 입학 쿼터를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IIT는 출세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돈 많은 하위 카스트’를 양산하는 경로가 되고 있다.

 인도 사회를 지탱해온 카스트가 흔들리는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IIT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 반대 의견이 거세다. 최근엔 IIM(인도경영대학원)의 인기가 더 높아지는 추세도 나타났다.

 캠퍼스에서 만난 디자인·엔지니어링 전공의 산디프(23)는 “쿼터는 카스트 기준이 아니라 경제력과 같은 다른 기준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쿼터제에 따른 학력저하에 대해 다타교수는 “IIT는 시험을 통해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유급시키는 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학력저하가 문제될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재 해외유출 논란에 대해서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발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델리(인도)=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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