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렌즈]질주하는 사자와 움츠린 호랑이의 승부

 LCD·PDP 패널업계 1위와 2위 업체의 경영전략이 위기속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1위 업체들은 신규 투자와 증산에 가속도를 내는 반면에 2위 업체들은 신규 투자보다 내실에 무게들 두고 힘을 비축하는 양상이다.

 폭풍우를 뚫는 ‘질주 카드’를 먼저 꺼내든 쪽은 LCD진영의 삼성전자다. 지난해 고심 끝에 8세대 신규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는 최근 내친 김에 가동 시점을 2개월 가량 앞당기기로 했다. LCD보다 상황이 더욱 어려운 PDP업계에서는 마쓰시타가 장고 끝에 신년 기자간담회을 열고 신공장 5라인 증설이라는 공격적 투자를 선언했다. 이들은 이참에 지루한 정상다툼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모험보다 실리를 선택하는 2위업체들의 전략도 뚜렷해지고 있다. LG필립스LCD는 8세대 대신 5.5세대 신규 투자를 선택하고 이 마저도 잠시 보류한 상태다. 지난해 A3 1라인과 2라인을 잇따라 가동하며 기세를 올리던 LG전자도 최근 생산량을 줄이고, A3 3라인 투자시기를 다소 늦추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이 회복되면 선발 주자의 시행착오를 극복해 보다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에 격차를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장치산업의 살벌한 게임의 법칙이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동반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공격경영과 내실경영은 각각 기회와 위기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자칫 무리한 투자가 기업의 총체적 부실로 이어질 수 있고, 투자 실기는 영원한 2인자로 전락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성공하면 한쪽은 시장지배력을, 한쪽은 체질 개선의 효과를 각각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3년 300㎜ 메모리 생산라인 투자를 놓고 전개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행보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이 공격적인 투자로 낸드플래시라는 신 시장을 창출 했듯이 삼성전자 LCD총괄과 마쓰시타가 증산을 감행해 50인치대 이상 대형 패널시장을 조기에 창출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 하이닉스가 기존 설비를 업그레이드해 낸드플래시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듯이 내실을 선택한 LG필립스LCD와 LG전자도 기존 설비를 활용해 50인치 이상 시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비바람을 뚫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사자와 더 멀리 뛰기 위해 잔뜩 움츠린 호랑이. 당장은 사자의 질주가 돋보인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부활했듯, 호랑이의 도약도 무시 못한다. 전문가들은 고속성장이 한풀 꺽인 지금이 패널업계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레이스는 이제부터라는 말이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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