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황혼의 빛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본 사람들이라면 뾰족한 구두코가 구두보다 더 길게 앞으로 나온 이상한 신발을 신고, 머리 헤어스타일은 딱따구리처럼 길게 지붕을 얹은 이상한 모양의 악단이 낯선 땅 미국에 가서 좌충우돌하는 기묘한 장면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제목부터 희한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누구일까? 핀란드 출신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 연출 스타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성냥공장 소녀’ 등 그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이번에 개봉하는 ‘황혼의 빛’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 중에서도 완성도 높으면서 대중성도 있는 작품이다.   차가운 도시 헬싱키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코이스티넨의 망가진 삶을 통해 한때 악동으로 불렸던 아키 카우리스키 감독이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울림 있는 감동을 전해준다.    코이스티넨은 (얀 히티아이넨 분)은 야간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많은 돈을 벌어 멋지게 살고 싶은 그의 꿈은 그러나 은행 대출 담당자 앞에서 일거에 좌절된다.   그의 이력서와 경력으로는 그가 원하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대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코이스티넨은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이 끝나면 스낵바에서 소시지를 사 먹고 작은 방 한 칸이 전부인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자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스낵바의 아이라(마리아 헤이스카넨 분)는 코이스티넨을 좋아하고 있지만 그는 그녀의 마음을 모른다.   범죄조직은 코이스티넨을 목표로 삼고 미인계를 동원한다. 미모의 미리야(마리아 예르벤헬미 분)를 의도적으로 코이스티넨에게 접근시켜 그가 경비를 서고 있는 보석상의 비밀번호를 알아내게 한다.   그리고 그가 근무 중 다시 그녀를 접근시켜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게 한 뒤 열쇠를 탈취해서 많은 보석들을 훔쳐 달아난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도 그는 끝내 자신에게 접근한 미리야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신 혼자 뒤집어쓴다. 그렇게 고지식할 정도로  답답한 인물이 코이스티넨이다.   결국 감옥에 갇혀 몇 년 동안 복역한 뒤 다시 세상에 나오지만, 보석 강도인 그를 주변의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다. 세상의 차가운 냉대로부터 그는 좌절한다. 겨우 얻었던 식당 접시 닦기도 범죄조직 보스의 밀고로 쫓겨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러나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 고독한 남자가 이제 따뜻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안도한다. 결국 사랑의 소중함, 따뜻함을 말하기 위해 감독은 이렇게 차가운 현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했었다.    아키 카우리스키 감독의 영화에는 대사가 별로 없다. 주인공은 거의 침묵 속에서 움직인다. 카이스티넨이 입을 여는 순간은 정말 꼭 언어가 필요할 때뿐이다. 그의 굳게 다문 입은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고 소외된 인간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지막 방어선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차갑고 냉정한 도시와 무표정한 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따뜻함을 역설적으로 갈구한다.   아키 카우리스키 감독은 ‘떠도는 구름’, ‘과거가 없는 남자’에 이어 그의 빈민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황혼의 빛’을 완성했다. 침묵이 만들어내는 뛰어난 영화적 미학의 세계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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