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서비스 결합상품 판매에 대해 오랜 고심을 해왔던 정보통신부가 결합상품 규제를 사후 규제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정통부는 내년부터 결합상품 요금이 일정 할인율 이하거나 일정기간 인가약관을 공표해 이의 신청이 없을 때는 정부의 요금 적정성 심사를 생략하는 형태로 결합판매 세부 심사기준 고시안을 마련할 뜻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유무선 통신사업자를 비롯한 각계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통신서비스 융합추세에 따른 결합상품에 대해 정부가 가급적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여 주목된다.
지배적 사업자의 유무선 결합서비스에 대한 정부 방침은 지금까지 허가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저렴한 요금으로 결합서비스를 낼 경우 시장경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에서다. 물론 결합상품 판매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배적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의 경우 정부의 규제로 결합상품에 대한 요금할인을 할 수 없어 마케팅 활동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는 등 경쟁력을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KT가 시내전화와 이동전화를 단순 결합한 ‘원폰’서비스를 출시한 지 2년이 넘었으나 아직 가입자가 17만명 선에 머무는 등 시장 활성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하나로텔레콤·데이콤 등 대부분의 통신사업자가 결합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특히 최근 통신위원회가 유선전화와 이동전화를 결합한 LG텔레콤의 ‘기분존(Zone)서비스’에 대해 위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등 후발사업자에 대한 동등 경쟁여건이 보장되는 상황이어서 더는 막을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이런 태도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통신시장의 정체가 계속됨에 따라 사업자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통신비 절감 등의 실익을 제공할 수 있는 결합판매 수요가 계속 커져온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이보다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에 따른 시장 변화 속에서 통신사업자의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도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거론할 정도로 시장환경이 급변해 결합상품 서비스를 제쳐두고 통신서비스 당면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정통부 실무자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차제에 통신 경쟁정책 자체를 재정립했으면 한다. 앞으로 각종 결합서비스가 속출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결합상품 판매가 허용되면 유무선 통신사업자간 합종연횡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 통신업계는 최근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어떻게 통합함으로써 소비자 만족도를 극대화할 것이냐가 최대 화두다. 특히 이동전화는 모든 통신수단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결합서비스 제공자가 단지 시장지배적인 사업자냐, 아니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결코 아니다. 기술발전과 소비자 이익을 따져봐야 하고 다른 통신사업자도 어떻게 하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것이 경쟁정책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통부가 후발사업자의 동등한 경쟁여건을 보장하고 지배적 사업자의 지배력 남용 등에 대한 보완장치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니 다행이기는 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결합판매의 요금적정성 등에 대한 구체적 심사기준도 없고 공정경쟁 안전장치 기능 역시 매우 취약한 상태다. 특히 통신서비스와 방송 등 비통신서비스 간 결합판매 규제에 대한 규정도 없는만큼 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촉진할 공정한 경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정책적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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