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보호 대책의 난맥

 정보보호 대책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매년 각종 개인정보 유출로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또 국정감사 때마다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도 예외없이 국정감사에서 정보보호 대책이 이슈로 부상했고 해당 의원들의 질타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3각 축인 정부와 국회, 민간이 기술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지나치게 구시대적 질서에 사로잡혀 경직돼 있는 게 근본 원인이다.

 산업계의 기술혁신 속도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 우리 고유의 광대역융합망 기술인 와이브로, 세계 최초 제4세대 이동통신 및 50나노 반도체 개발 성공 등에서 보듯 산업계의 기술혁신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과 비타협적인 경직성으로 인해 이들 기술의 산업화가 뒷덜미를 잡히고 있다. 근래 국가 경쟁력 지수가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가 하면 정상을 달려온 국가정보화 지수 순위마저도 한 풀 꺾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경직성은 지난 2년여를 끌어온 통신·방송 융합환경의 수용 차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통·방 융합은 최근에야 정부 내에 추진위가 구성돼 제도 개편에 착수할 정도로 지연되고 있다. 통·방 융합 환경이 우리보다 떨어진 경쟁국들조차 우리보다 앞서 통·방 융합 제도를 마련한 지 오래다. 통·방 융합이 지지부진한 것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방송업계와 통신업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좀처럼 내어놓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여기에다 갈등을 풀어내고 타협을 이루어내야 할 국회마저도 문화관광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로 나누어져 문제해결에 도움이 못 되고 있다. 결국 정부의 결단으로 ‘방통융합 추진위원회’가 가동되면서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보보호는 정보화 사회, 앞으로 도래할 유비쿼터스 사회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지지부진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2년 전, 우리는 만연한 개인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의 개인정보보호 법체계가 공공과 민간으로 나뉘어 있고, 감시대상에서 제외된 특별 보호 영역이 많아 감독기구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개인정보보호 기본법 제정작업에서 보여준 우리 사회의 경직성은 정말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민간단체들은 정부를 불신해 독립적인 위원회 성격의 통합 감독기구 도입을 고집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를 담당해온 행정자치부는 독자 행보에 치중하며 기본법 제정에 내심 반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민간 부문을 책임지는 정보통신부는 독립적인 감독위원회 설립에 반대하며 기존처럼 정부 내 감독기구를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국회가 발의한 통합 기본법이 지나치게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악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간단체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기본법을 상정한 국회조차 내부 이견과 외부의 반발에 부딪혀 2년 가까이 법안을 다루지 않고 있다. 국회는 그 사이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학교보건법을 통과시켜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개별법 체계를 추가했다. 이미 8개 가까운 개별법이 존재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최근 ‘건강정보보호 및 관리·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말 그대로 갈수록 태산이다. 개인정보보호 제도의 혁신은 이제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국회·업계가 얽히고설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개인정보보호 제도 혁신 없이는 유비쿼터스 사회도 공염불에 불과한만큼 정부와 국회·민간단체·업계가 공히 경직성을 벗어던지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하루빨리 튼튼한 기초를 다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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