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내세우며 출범한 참여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기술 경시 풍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명장·기술사 등 전문기술인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2%가 “우리 사회의 기술경시 풍조를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과학기술 입국에 치명적이라는 인식 아래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정부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유교적 직업관이 단시일 안에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지난 2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변화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며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전문기술인 10명 중 8명이 여전히 ‘전문기술인으로서 상실감이 있다’고 답해 기술경시 풍조가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문기술인에게 상실감을 조장하는 요인에서도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30% 가까이가 ‘대우가 미흡하다’거나 ‘기술을 전수할 후배가 없다’고 응답했다. ‘기술직을 낮게 보거나 사무직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고 있는 전문기술인도 20%에 달했다. 실제로 전문기술인은 유사한 경력의 사무직 임금의 83.3% 수준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도화선이 됐던 고용 불안도 여전하다. 41%의 전문기술인이 ‘고용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항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고 응답했다. 기술경시 풍조가 개선되지 않은 탓에 ‘사무관리직으로 전환할 기회가 생기면 옮기겠다’는 응답도 44%로 나타나 오히려 2년 전 조사 때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정부는 그동안 중앙부처의 기술직 고위 공무원 수를 확대하고 5급 이하 기술직 공무원의 활용방안을 마련했다. 국가기술자격제도 개선도 상당 부분 진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의도와 달리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의 이공계 우대는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으며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전반적인 공무원 선호 추세가 두드러져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의 의미는 묻혀 버렸다. 외려 이공계 출신 고위공무원 확대는 단순한 숫자의 증가에 그치고 있을 뿐 요직에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이공계 기피 현상 극복과 기술인 우대 정책이 시혜성 차원에 치우쳐 효과가 부분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시인하고 더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만연된 기술 경시와 이공계 기피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유교적 인식의 전환보다는 우리의 산업 및 교육환경에서 구조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저부가가치 조립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어 기술인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기존 기술을 활용한 산업은 급속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 해당 기술인은 고용 불안과 경시의 대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반면에 교육시스템은 아직도 저부가가치산업 시절의 기술인력 양성에 머물러 있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 필요한 첨단 기술인력은 대부분 해외파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제쳐두고서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와 일부 교육계 종사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 개혁에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계의 지나친 세력화로 산업 구조조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강성 노동조합과 교육단체에 안주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술인과 학생은 기술경시 풍조와 고용 불안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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