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먹기도 이쯤되면 몰염치 수준이다. 추천권(사실상 선임권)을 가진 여야 정치권은 죄다 제 ‘코드’에 똑 들어맞는 인물만 뽑아냈다. 기대를 걸었던 대통령 몫 역시 ‘코드 인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벌써 세 번째다. 애초에 정치적 견해와 이해가 다른 집단의 ‘균형적 추천’이 빚은 예고된 ‘부실’이다. 해도 너무 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3기 방송위원 선임 이야기다.
정치권은 방송을 선거용 권력으로 인식하나 보다. 장악해야만 할 대상이다. 내 편, 네 편 정확히 갈라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인물을 고집하는 모양새다. 철학과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후보자들이니 정식 임명 전부터 바람 잘 날이 없다. 한쪽에서는 일부 인사가 ‘꼴보’의 전형이라며 과거 경력을 들이댄 채 포기하라고 난리다. 병역문제에 정경유착이라는 단어까지 동원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 특보 출신이니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임명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곳에선 ‘감투 노리고 시민 운동했느냐’고 비판한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추천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2기 방송위원은 관련 노조 반발로 업무를 제때 시작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 발 더 나간다. 정식 임명 전부터 흠집내기·폭로·기싸움이 폭발했다. 방송에 한 발이라도 걸친 집단은 모조리 제 목소리를 낸다. 3년 임기에 장·차관급 예우를 받게 되는 신임 방송위원들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정말 한심한 것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 파워 엘리트의 아날로그적·단선적·후진적 사고다. 9명의 방송위원 추천은 3대 실세집단 권한이다. 대통령·여야 정당이 그들이다. 여야의 추천인들은 하나같이 지상파 출신이거나 언론학자·시민운동가다. 대통령의 추천 범주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유력후보의 절반 이상인 5명이 지상파 출신이다. 이대로라면 ‘방송위가 지상파 양로원이나 상원이냐’는 비난을 듣기 좋은 형국이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방송위는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꼴이다. ‘방송=지상파’이던 시대는 끝났다. 방송=통신, 방송=인터넷, 방송=뉴미디어의 등식이 성립된 지 이미 오래다. 상황이 이런데도 새로운 조류를 아우르고 조율할 전문가는 추천 후보 어디에도 없다.
시대정신에 투철하라. 정치인들의 입버릇이다. 21세기 방송의 시대정신은 다양화·융합화다. 3기 방송위원 선임에도 이런 정신이 스며들어야 한다. 산업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 통신이나 뉴미디어를 대변할 인사, 도적적 가치나 인수합병을 재단할 법조인 한두 명쯤은 포함돼야 한다. 시대적 당위다. 지금과 같은 인적 구성은 미국이나 영국 규제기관 어디에도 없다.
2기 방송위에 새롭게 추가된 비판은 지상파 중심의 논의 구조였다. 지상파의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는 정책적 판단이 많았다는 것이다. 방송의 영역파괴가 가속화되면서 발생한 자연발화다. 3기는 상상도 못할 더욱 새로워진 환경을 맞이할 것이다. 대비해야 한다. 방송은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바에야 임명권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방송위원 역시 신이 아니다.
시대적 과제는 실종된 채, 제 밥그릇 챙기기와 정치적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3기 방송위원 추천 과정은 지금이 5공 시절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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