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혁신특강을 끝낸 뒤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직장에서 하는 혁신처럼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좋은 혁신사례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적잖이 당황했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한 작은 사례 하나가 떠올랐다.
음악을 하는 아내 덕분에 우리집은 아파트 1층에 있다. 방음 문제를 생각해서였다. 10년 전, 신도시 건설붐을 타고 지어진 이 아파트 단지에는 유난히 1층 화단이 넓다. 언뜻 좋아 보이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골칫거리가 있는데, 바로 화단 쓰레기다. 담배꽁초, 우유팩 등등…, 지저분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매일 아침 화단 쓰레기를 줍게 됐다.
그러나 주워도 주워도 매일 쌓이는 쓰레기를 보면서 ‘뭔가 혁신적인 방법이 없을까’하고 고민하게 됐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화단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써 붙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겠지만, 솔직히 그걸 읽고 따를 만한 사람이라면 애초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 작은 혁신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파트 주민이 모두 애착을 갖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예쁜 꽃들로 꽃밭을 꾸미면 어떨까. 곱게 단장한 꽃밭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화원이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당장 계절별로 꽃을 피우는 다년생 꽃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다.
그 해 봄부터 꽃잔디로 시작해 여름엔 환한 백합, 눈부신 장미꽃 등이 차례로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국화가 화단을 가득 메웠고, 때로는 사랑초와 칸나가 여러 가지 색을 뽐냈다. 어느덧 3년이 지난 지금, 제법 그럴 듯하게 꽃밭이 자리를 잡았다. 화단에서 쓰레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민들도 예쁜 꽃밭 덕택에 아파트 가치가 높아졌다고들 좋아한다.
이 일로 혁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좀더 수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것. 진정한 혁신은 ‘휴머니즘’에서 출발한다. 혁신이 우리 삶 속에서 활짝 꽃 피울 때, 이 사회가 더욱 따뜻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용홍택 과학기술부 혁신기획관 htyong@m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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