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비즈니스 모델`은 곧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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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복스(Devox)를 아십니까?’ 라이언 매튜스와 와츠 왜커가 지어낸 ‘괴짜들의 소리(Voice of Deviance)’를 줄인 말이다. 괴짜들(또는 별종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그중 어떤 것들은 마침내 새로운 시장을 만들며 새로운 이익창출의 발판을 구축한다. 60년대 초 미국 아칸소 한 시골에서 시작한 월마트가 선두주자 K마트를 제치고 세계 속의 할인매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대표적인 ‘괴짜의 성공사례’일 것이다.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10년 전 하찮게 시작된 붉은악마의 응원 양식이 지금은 전국 도심과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국민 놀이마당으로 발전했고, 더욱 놀라운 것은 각국이 우리를 모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괴짜 같은 시도가 전 세계의 표준이 돼버린 예다. 독일·에콰도르 전에 등장한 관중석의 대형 국기를 보니 할 수만 있다면 선수 없는 경기장에서 고함을 지르고, 밤 10시에 시작하는 TV 중계를 보기 위해 한낮부터 길바닥을 지키는 이 모든 행태에 국제특허를 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괴짜가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괴짜는 변두리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심지어 대기업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퍼붓지만 막상 그렇게 발견된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져서 상품이 되거나 새로운 기업문화로 정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실패를 장려하는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톰 피터스는 빨간 잉크를 여기저기 마구 뿌려놓은 괴짜스러운 책 ‘미래를 경영하라!(Re-Imagine!)’에서 “실패야말로 기업과 개인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실패만이 살 길”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비록 성공하는 괴짜는 드물더라도 변화의 원천은 예외 없이 괴짜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젤 노르트스트룀과 요나스 리데르스트렐레가 쓴 ‘펑키 비즈니스(Funky Business)’도 맥락을 같이 한다. “비슷한 기업이 비슷한 교육배경과 아이디어를 가진 비슷한 사람을 고용해 비슷한 물건을 생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했다. 튀는 생각이야말로 탈정보화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책의 부제로 ‘탤런트가 자본을 춤추게 한다’고 붙인 이유를 알 만하다.

 벤처가 무엇일까.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이 아니던가. 그래서 지금은 벤처 시대다. 이 말이 지나치다면 ‘창의 시대’로 바꿔 부르겠다. 여기서 괴짜로서의 벤처에 친화적인 기업, 정부 그리고 리더의 덕목을 생각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즉 괴짜 시대에 CEO의 역할은 무엇이며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최소한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패를 장려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라.” 당신은 실수에 관대한 CEO인가.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편일까.

 그래도 2% 부족하다. 아이디어만으로, 기술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그것이 비전이다. 벤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전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잠깐 머물다 사라질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줄 때 비로소 성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된다. 모험자본(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그 예를 최근 방문한 두바이에서 보았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듯이 두바이는 사막 위에 아라비아의 기적을 건설하고 있다. ‘바깥 기온 50도인 사막에서 스키를 즐길 수 없을까’ ‘해저호텔 투숙객이 자기 방의 유리창을 비켜 가는 물고기의 유영을 감상할 수 없을까’ 등 괴짜 생각을 ‘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는 꿈’으로 바꾼 리더십이 있다. 이쯤 되면 전 세계 거대 자본이 몰려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우리는 창업가 정신이 응집된 괴짜 집단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타고나기는 변두리 민족인데 끊임없이 세계의 중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괴짜다. 문제는 실패를 장려하고 괴짜를 용인하지 못하는 문화다. 괴짜 아이디어에서 비전을 보는 긍정적인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가 그렇고 기업인이 그래야 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도 예외일 수 없다.

 권성철 한국벤처투자 사장 sgweon@k-v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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