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산업기밀 유출 두고 볼일 아니다

 기업연구소 5곳 중 1곳인 20.9%가 최근 3년간 산업기밀 외부유출로 피해를 봤다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기업연구소 산업기밀 관리실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더욱이 연구개발투자 상위 20대 기업의 절반이 기밀 유출로 인해 손해를 봤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산업기밀이 유출돼도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연구소의 허술한 보안상태나 의식을 탓하기 이전에 산업기밀 유출로 인한 국내 산업과 국가 경제의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95건의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인한 기술유출을 막지 못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액이 93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국가정보원 자료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산기협의 조사결과는 첨단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개발한 기술의 보안이 더 시급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연구기관 및 기업 비밀의 대외 불법유출이 급증해 국가경쟁력 하락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치열한 기술경쟁 시대에는 유형의 재산보다 무형의 노하우·정보·기술이 기업 생존과 경쟁의 핵심무기가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산업기밀 관리가 허술해 유출된 정보나 기술이 주로 중국이나 대만 등 경쟁국가에 넘겨져 국내 기업에 이중 삼중의 피해를 주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국내 제조업체가 중국 기업과 기술 격차가 좁아지고 있는 데 대해 중국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32.4%)보다 국내 기업의 기술유출(34.6%)이 더 큰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기술유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업기밀의 유출경로가 한두 가지 형태라면 쉽게 막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산업스파이 유형이 핵심인력 스카우트는 물론이고 복사·절취·e메일·관계자 매수·견학 등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다. 아예 통째로 빼돌린 기술로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합작사업 및 공동연구에서도 산업기밀이 유출되는 사례가 16.7%에 이른다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 투자에 나서고 있고 중국 기업과 활발히 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산업기밀 관리임을 일깨워 준다.

 특히 산업기밀 유출의 63.5%가 퇴직자를 거쳐 이루어진다는 조사결과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고용관행이 달라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인력 이동을 통한 산업기밀 유출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고급 두뇌가 해외로 나감으로써 발생하는 기밀유출은 현행법으로도 단속이 불가능하다. 이들 고급 두뇌가 국내에 머물러 있도록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등 각종 지원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산업스파이 행위를 막기 위해 연구원 등 기술개발 인력에 윤리의식이나 국가관만을 강조하는 것도 부족하다. 그동안 적발된 산업스파이의 범행동기가 금전적 욕구나 인사에 대한 불만인 것을 보면 성과보상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기업비밀을 보호하는 것은 기업 본연의 임무일 뿐만 아니라 주요한 경영전략이다. 경쟁의 핵심인 ‘나만의 기술’을 보호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기술보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첨단기술 유출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기업의 산업 보안 노력을 지원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산업기술유출방지법안을 두고 규제 요소가 많다고 논란만 벌일 게 아니라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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