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뛴다! 반도체 코리아]과거는 잊어라 신화는 지금부터다

‘한국 반도체는 아직 배고프다.’ 세계 반도체시장의 1%를 점유하며 80년대 중반 가까스로 ‘반도체 월드컵 예선’을 통과한 한국 반도체산업. 그 기세를 몰아 ‘본선’에 뛰어든 한국 반도체호는 10여년만에 세계 3강을 거머쥐며, 세계에 ‘반도체 코리아’를 각인시켰다. ‘예선 통과만도 기적’이라고 평하던 전세계는 이제 부러움과 질시의 눈으로, 한국 반도체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선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I`m still hungry(아직도 배고프다)’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한국 반도체호는 세계 3강을 넘어, 이제 세계 최고를 향해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반도체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산업의 대표선수.

 반도체가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산 4.3%, 부가가치는 총 제조업의 6.1%를 차지한다. 반도체관련 업체 수는 500여개, 종업원수는 약 9만명으로 GDP의 5%다. 또 반도체는 1992년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상품으로 지난해에는 총 302억달러를 수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0.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 반도체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스타 플레이어’들의 선전으로 위상은 확보하고 있지만, 기반을 확고히 하는 담금질 없이는 세계 최고는 고사하고, 중국·대만·인도 등 급부상하는 신흥세력에게 현재 자리조차 빼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만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산관학연 곳곳에서 제기되고 이다.

 플래시메모리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반도체산업협회장) 조차도 “한국 반도체는 완성이 아니라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을 뿐인데 우리가 가끔 이를 망각한다”며 “지금까지 끼니를 거르며 매진했다면, 이제부터는 잠을 아껴가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만에 빠질 충분한 ‘자격’을 가진 삼성전자 조차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이유는 반도체산업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일부 선진국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반도체는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모아지지 않으면, 바로 경쟁력을 상실해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형체도 아직 불분명한 ‘개념적 산업’에 전폭적인 성원을 보내면서도, 정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본선에 진출한 반도체호에 대해서는 ‘무성의한 박수’를 보내는 수준에 머물렀다.

 아직 싹도 형체도 없는 산업에 엄청난 양의 비료를 뿌리면서도,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산업에는 충분한 물조차 제대로 뿌려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경쟁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반도체 국책사업을 전개하고, 음으로 양으로 성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반도체는 이제 그냥 놔둬도 스스로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은 자만이다. 딴죽을 걸기 시작한 경쟁국들의 공세에 상처입지 않도록 한국 반도체호에 외투라도 걸쳐주고, 마라톤의 반환점을 돈 반도체호에 물병이라도 건네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한국 반도체호의 미래를 위해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도 함께 뛰고 있다. 메모리에 비해 체격은 외소하지만 ‘눈빛’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강하게 빛난다.

 ‘세계 최고’의 자리는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전략과 전술’ 없이는 결코 쟁취할 수 없다. 예선전을 치르며 선진국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기에도 버거웠던 한국 반도체호는, 그러나 이제 세계 최초의 ‘전략과 전술’을 선보이며 미래반도체·차세대반도체 물결을 일으키는 진원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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