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으로 떠나는 여행]#24

 지난 회에 이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다시 해 보자. 타임머신은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휴지가 없다거나, 우산을 잊고 왔는데 비가 내리면 ‘타임머신’을 써서 과거로 돌아가 휴지나 우산을 가져올 수 있다.

‘타임머신’처럼 거창한 기계로 고작 휴지나 우산이냐고 얘기한다면, 미래로 가서 복제 기계를 가져와도 좋고, 무엇이든 갖고 있는 고양이형 로봇을 데려올 수도 있다. ‘대나무 콥터’나 ‘어디로든 문’에서부터 ‘지구 파괴 폭탄(!)’까지 그야말로 없는게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시간 여행에는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 여기 한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외할머니에게 혼난 철이는 타임머신을 써서 과거로 날아갔다. 그리고 어릴 때의 외할머니를 총으로 쏴서….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철이는 자기 외할머니(어머니의 어머니)를 죽였다. 그렇다면 철이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게다가 철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거로 가서 외할머니를 죽인 것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외할머니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면 철이는 누구에게 혼나서 누구를 죽이러 간 것일까?‘타임머신’ 그리고 시간 여행에 대한 이토록 복잡한(머리 아픈) 문제는 우리의 세계가 단 하나의 시간 축, 그리고 단 하나의 차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가정을 해 보자. 만일 이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서는 글을 읽고 있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만화책을 보고 있다면?

무한한 선택 속에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무한한 운명이 존재하는 우주…. 이것을 바로 멀티버스(Multi-Verse)라고 부른다(한편, 우리 세계와는 다른 가능성을 가진 세계를 평행 세계(패러럴 월드-Parallel World)라고 한다).

멀티 버스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져 나갈 수 있다. 눈을 떴더니 어딘가에서 폭탄이 날아오고 아름다운 메이드 로봇이 나를 주인님(^^)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화가로 인생을 마쳤고, 스탈린은 반역죄로 총살당했는가 하면 남북한이 통일돼 만주를 지배하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은하수를 여행할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상상하나 만으로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이 펼쳐지는 것이다(멀티버스가 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의 서버를 생각해 보자. 한 서버에서 PK인 내가 다른 서버에서는 영웅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서버에서는 그냥 평범한 인생을 보낼 수도 있는 것처럼, 멀티버스의 ‘나’는 나와는 다른 역사를 갖게 된다).여기 파란 세계와 빨간 세계가 있다고 하자. 빨간 세계는 바로 우리들의 세계. 히틀러가 있었고 2차 대전이 벌어졌으며,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공격하도록 한 그 세계. 그런데 누군가(아인슈타인?)가 과거로 돌아갔다. 바로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그의 목적은 달성됐고 히틀러는 죽었다. 그런데,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빨간 세계(우리 세계)에서 히틀러는 그대로 살아있고 이라크전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우리 세계로 돌아오지 않았다. 히틀러를 죽이는 순간, 그는 ‘빨간 역사’가 아닌 ‘파란 역사’(히틀러가 죽고 다른 콧수염 사나이가 그 자리를 대체한 역사)를 선택해 버렸고 그 세계로 가 버린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 약을 집어 들고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를 선택했듯이.

말하자면, ‘타임머신’은 시간 여행 장치가 아니라 ‘역사 선택 장치’라고 해도 좋다. 역사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수많은 역사 속에서 ‘내가 원하는 역사’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상황이건 내가 바라는 역사…. 하지만 그 선택이 항상 옳다곤 할 수 없다. 정말로 행복한 삶인가 했더니 결국 최악의 선택이 되기도 하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낳을 지도 모르니까.‘타임머신’이 없는 한, 멀티버스는 항상 일방 통행에 지나지 않다. 오늘 점심에 햄버거를 먹었다면 점심에 설렁탕을 먹는 선택은 사라져 버리고, 내 몸에는 햄버거의 지방이 쌓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세계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부시가 아니라 고어가 대통령이 되고 그 결과 이라크전이 일어나지 않은 세계가 생겨났을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런 세계가 있다 해도 우리는 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 그런데 만일, ‘평행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대운동회’, ‘천지무용’ 등을 제작한 AIC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듀얼 패러럴 룬룬 이야기’는 바로 그런 패러럴 월드의 모험담을 흥미있게 그려나간 작품이다. 한 공사현장에서 유적으로 보이는 물건이 발견됐다. 자 여기서 유적의 발견을 보고하는가(이 경우 조사다 뭐다 해 공기가 늦어지게 되고 최악의 경우 취소된다) 아니면, 그냥 무시할 것인가? 바로 여기서 세계는 두 개로 갈라지게 된다.

주인공 카즈키는 그 중 한 세계(파란 세계?)의 주민. 하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놀라운 능력이 있다. 바로, 세계 저편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밖에서는 로봇이 싸우고 있다. 미사일이 날아오고 놀라지만 그건 오직 그 혼자만 볼 수 있는 ‘환상’. 하지만, 한 과학자가 이에 관심을 갖고, 주인공은 다른 세계로 날아가 버린다. 바로 ‘유적’이 발견되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 세계로….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있다. 평행 세계를 ‘선택’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택되지 않는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가령 주사위를 굴렸을 때 6이 나왔다면 나머지 5개의 세계는…?

한편, 평행 세계의 가능성과 관련해 일본에서 나온 ‘파괴마 사다미츠’라는 작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외계의 침략자에 대항해 싸우는 것처럼 시작된 이 이야기지만, 예지 능력을 가진 주인공 사다미츠에 의해서 주인공 자신 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모든 평행 세계가 붕괴되어가는 이야기다.

미래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고 할까?

평행 세계, 혹은 멀티 버스 세상에 수많은 내가 있는 것처럼 상상의 세계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만일 지금 어려운 일이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보자. 저기 어딘가에는 행복한 내가 있고, 내게는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과거로 날아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일이 아닐까?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그림설명>

- 내가 나를 만나면? 상상 속에선 이런 것도 가능하다. ‘엑설런트 어드벤쳐’

- 그야말로 무수한 나….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갤럭시 엔젤’

- 역사가 바뀌는 순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프리퀀시’에서는 이를 스릴 있게 펼쳐나간다.

- 버릴 것인가 가질 것인가. 그 작은 변화가 또 다른 평행 세계를 낫고 세상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듀얼 패러럴 룬룬 ’이야기.

-‘로스트 메모리즈’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어찌될 것인가?

- 히틀러가 승리했다면, 이런 통제 사회가 펼쳐졌을까?

- 시간 여행으로 인해 갈라진 세계. 이것이 ‘패러럴 월드’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고양이형 로봇. 얘를 데려오면 그야말로 만능이겠지?

- 빨간 역사와 파란 역사.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 평행 세계의 두 여주인공. 외모가 비슷한 것은 그녀들의 어머니가 같기 때문이다(아버지는 다르지만).

- 멀티버스의 자신을 죽인다면? 이연걸 주연의 ‘더원’은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을 던져 준다.

- 평화로운 교실 저편으로 펼쳐지는 전쟁의 광경. 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 괴상한 기계로 인해 주인공은 딴 세상으로 날아간다.

- 개선문에 겹쳐버린 자유의 여신상. 두 세계가 합쳐지면서 세계는 멸망으로 나아간다.

- 그렉 이건의 ‘쿼런틴’. 상당히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파괴마 사다미츠’. 그는 예지 능력을 통해 세계를 파괴해 나간다.

<전홍식기자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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