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통사와 윤리위의 야합

휴대폰용 성인 콘텐츠에 음란시비가 따라다닌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국이 가정의달인 5월을 전후해 음란 콘텐츠 단속 실적을 발표하는게 연례행사가 돼버린 마당이다. 올해도 경찰청은 엊그제 이동통신3사 관계자들을 음란물 유포 방조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청이 밝힌 수사 배경도 가관이다. ‘음란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콘텐츠제공업자(CP)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대기업의 윤리경영 및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요즘 성인콘텐츠 사전심의 방법을 놓고 이동통신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다. 경찰수사에 불안을 느낀 이통사들이 급기야 콘텐츠 심의를 국가기관인 윤리위에 맡겼고 윤리위는 이 제의를 덜컥 받아버렸단다.

물론 정부기능 차원에서 본다면 윤리위의 음란물 사전 심의가 나쁠 건 없다. 청소년 유해물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윤리위로서는 이통사의 심의 요청을 받아들이는게 당연했음직 하다. 이통사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응당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할 터다. 그런데 이론 이통사의 요청에 윤리위가 화답한게 일종의 야합으로 비쳐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윤리위는 알다시피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사후심의 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심의결과를 토대로 해당정보의 삭제나 이용정지와 같은 시정요구 등이 주된 역할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사전 검열이라는 오해를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유해물에 대한 사전심의 기능은 없다는 사실이다 .

윤리위는 그러나 ‘청소년보호법’ 등이 정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사전 심의 기능을 들어 이통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런 해명은 법해석의 오류라는 법률 전문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논란을 낳기에 충분하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은 모두 음란물로 봐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이 그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 규정한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 등이 유해매체물의 기준이라면 18세이상 등급을 받은 콘텐츠는 모두 음란물로 봐야하는 것이다. 이런 논법은 콘텐츠산업의 위축을 가져와 이통사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통사와 윤리위간의 합의가 IT산업 발전 흐름이나 자율심의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는 사실이다. 관급 심의나 등급제에 대한 폐해는 그동안 여러차례 지적돼왔다. 매일 쏟아지는 디지털콘텐츠를 관이 통제한다는 것은 디지털시대에 적합하지도 않을 뿐 더러 할 수도 없다. 인력·비용면에서도 낭비적 측면이 더 크다.

우리보다 디지털마인드가 낮은 나라에서도 사회적 합의로 출범한 민간기구나 사업자 스스로 정한 지침에 따른 자율심의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사례가 없는게 아니다. 일반 CP들의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미 민간기구 무선콘텐츠자율심의위원회가 3년째 자율심의를 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문제가 없다.

시장포화에 시달리는 이통사들에게 성인용 콘텐츠는 가장 손쉬운 ‘비즈니스 모델’ 일 수 있다. 하지만 10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 수백억원대의 매출 욕심 때문에 음란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일이 못된다. 관의 힘을 빌어 음란 시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더욱 앞뒤가 안맞는 일이다. 음란시비는 스스로 자율규제 지침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참에 윤리위의 역할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 윤리위와 같은 기관이 해야 할 일은 심의 그자체에 머무는 소아적 역할일 수는 없다. 윤리위가 사전심의 근거로 내세운 ‘청소년보호법’ 의 해당 조항(12조) 조차도 오히려 큰틀의 자율규제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디지털 시대 윤리위의 새로운 역할이 기대된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