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영광의 산업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서 과거 어려울 때 외국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돼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 오지 여행탐험가에서 이제는 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한비야씨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로 기억된다. 물론 지원금 규모는 국가경쟁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말이 뒤따르지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다.

 최근 기계산업과 전자부품산업의 기적 같은 성공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던 자부심이 되살아난다. 기계산업과 전자부품산업은 불과 4∼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마지막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과거 일본과 단교하면 우리나라 제조산업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붕괴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의 근원이 바로 기계와 부품산업의 경쟁력 차이에서 비롯됐음은 부인키 어렵다.

 이런 기계산업과 부품산업이 이제는 수출효자 산업으로 우리 경제를 든든히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연간 수출액은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무역수지 흑자 또한 40억달러를 웃돈다. 기계산업은 지난 10년간 적자 규모만 무려 1000억달러에 육박했다.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수출 중 7.8%, 전체 무역흑자 중 18%를 차지했다. 반도체·무선통신기기·자동차에 이어 네 번째다. 기계를 만드는 기계, 이른바 공작기계산업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지난해 우리나라 공작기계산업의 생산과 수출도 사상 처음으로 3조원과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생산 규모 면에서는 세계 7위, 수출 규모에서는 세계 6위다. 부품산업의 성공 역시 기계산업 못지않다. 우리나라 전자부품의 수출 비중은 전자제품 전체 수출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비중만 높아진 게 아니다. 지난 2003년 300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460억달러, 올해에는 500억달러를 훨씬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역수지 또한 2003년 적자에서 2004년 처음 흑자로 전환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100억달러 가까운 흑자를 실현했다.

 우리 경제에서 영원히 미운 오리새끼로 남을 것 같던 기계산업과 부품산업의 성공이 시사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날로그산업에서 디지털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발빠른 변신, 부품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괄생산체제를 갖추려는 노력, 여기에 정부의 정확한 현실 인식과 올바른 정책이 더해진 결과 말 그대로 ‘기적’을 이룬 셈이다.

 우리가 IT코리아를 내세우며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지만 밑바탕에는 바로 기계와 부품산업이 소리없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에 의해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쓰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같은 영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한 노력이 있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기계산업이나 부품산업을 이끄는 기업 대부분은 중소전문기업이다. 그만큼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최근 환율로 인해 수출 탄력성을 잃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당장 완제품 위주의 대기업을 정점으로 기계와 부품이 받쳐주는 산업구조의 틀을 짜 동반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새로운 제품 개발 시 부품에서 완제품 그리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까지 포괄적인 개발 및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재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이 지금부터라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투자가 선행되는만큼 정부와 대기업이 앞장설 수밖에 없다. 기계와 부품산업이 보여준 영광처럼, 지금의 작은 노력이 2010년에는 소재 분야에서도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 보자.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