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4부:통·방 융합은 보편적서비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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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규제체계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 주제는 통신·방송 사업자들간 시장진입을 교차 허용하는 문제다. 사진은 지난 2월 본지가 개최한 ‘IPTV 시장전망 워크숍’ 모습. 이날 행사는 기대 이상의 참여를 보여 IPTV 상용화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보여줬다.

(4)결산:규제정책 근본 틀을 바꿔라

 통신·방송 융합 환경은 규제 정책의 근본 틀을 재편하도록 요구한다. 이미 통·방 융합은 시장에서 도도한 흐름으로 터져나오고 있으며 제각각 분리된 채 서로의 아성을 지키려던 전통적인 규제정책은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돌리고 시장이 원하는 신규 통신·방송 융합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는 규제테마는 기존 수직적 규제체계를 수평적 규제체계로 옮기는 이슈다. OECD와 EU는 이미 통신·방송 융합시대 규제 틀로 수평적 규제 원칙을 천명한 바 있으며 선진 각국들에게는 새로운 규제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다.

수평적 규제체계의 핵심은 통신·방송 사업자 분류를 △유선·무선·통신·방송 등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전송사업자와 △이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콘텐츠 사업자 두가지로 나눠, 전송사업자에 대해서는 시장진입 등 사전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게 골자다. 기술발전에 따라 과거와 달리 모든 전송 네트워크에 사실상 제한없는 콘텐츠를 실어나를 수 있는데다 망의 독점적 성격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 이들 사업자에 대해서는 시장경쟁을 통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이 규제정책의 목표다.

대신 콘텐츠 사업자의 경우 사회문화적 영향(공익성) 등을 고려해 비교적 강한 사전·사후 규제를 적용하자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동안 수직적 규제 틀에 얽매였던 선진국 가운데 이미 영국은 발빠르게 변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의회를 통해 수평적 규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수평적 규제체계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는 방송·통신 사업자들간 시장진입을 교차 허용하는 문제다. 통신사업자들의 IPTV나 케이블 사업자들의 인터넷전화(VoIP)가 대표적인 사례. 우리는 갈등만 거듭하고 있지만 해외 선진국 가운데는 기존 통신과 방송서비스간 영역을 폐지해 상호 진입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추세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내 방송계에서는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교차진입을 허용할 경우 민간 재벌이 미디어 기업을 지배하게 된다는 해묵은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OECD 대다수 회원국들은 소비자 편익향상과 경쟁을 통한 산업활성화 차원에서 통신·방송 융합서비스에 대해 진입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IPTV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영상물 전송은 방송’이라고 규정한 나라는 현재 벨기에·캐나다·룩셈브르크·스페인·스웨덴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카나다는 방송사업으로 정의만 했을 뿐 규제는 없다. 당분간 진통을 거듭하겠지만 우리나라도 통신·방송 사업자간 시장교차 진입은 앞으로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이나 통신·방송 시장 교차진입 현안과 직접 연관된 ‘시장획정’ 이슈는 통·방 융합 규제정책의 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무선 통신이나 방송 영역에서 제각각 분리 독립해 존재하던 전통적인 시장의 경계는 곧 사라지게 되는 가운데, 융합 시장을 어떤 기준에서 어떤 식으로 나눌지가 근본적인 고민인 것이다. 특정 시장영역의 거대 사업자가 융합서비스를 통해 그 지배력을 확장해 갈 경우 시장 공정경쟁, 궁극적으로는 소비자 편익마저도 해칠 수 있다는 점이 단적인 우려다.

또 하나 통신·방송 융합 규제정책의 이슈 가운데 방송시장의 소유·겸영 규제는 조만간 수술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통신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소유·겸영규제는 현재 국내 방송환경에서는 기존 방송사업자 위주의 왜곡된 시장구조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융합추세로 인해 미디어 환경에도 공익성 개념과 더불어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는 만큼 △지상파방송 진출을 금지하는 대기업의 기준 완화 △지상파방송·SO간 겸영 금지를 제한으로 완화 △SO의 1/5 겸영제한을 1/3로 완화 △위성방송 등의 대기업 지분 제한(33%)의 완화(49%) 등을 대안으로 꼽고 있다.

통·방 융합정책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또 기존 허가제도의 대폭적인 손질도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로 이원화돼 있는 방송 사업 허가제(허가 추천제)의 경우 까다로운 사전규제를 의미하는 가운데, 사실상 ‘옥상옥’ 행정 처리절차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신규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네트워크 사업자에 한해 허가제를 단일화하고, 그 절차 또한 등록 내지 신고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특히 향후 통신·방송 규제정책의 개선방향 중에서는 시장 공정경쟁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후규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특정 시장의 지배력을 다른 융합시장으로 전이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결합상품 규제와 요금 규제, 상호접속 규제 등이 주요 이슈들이다. 결합상품의 경우 ‘전화+초고속인터넷+방송’이라는 이른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가 이미 선보이고 있고, 조만간 이동통신까지 묶은 쿼더러플플레이서비스(QPS)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결합상품이 개별 상품을 일일이 구매할때와 비교해 요금혜택을 줄 수 있지만 거대 사업자가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고 이는 결국 독점력을 강화시켜 소비자들에게도 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수단이 시장 공정경쟁 환경을 위한 요금규제와 상호접속 규제다. 종전에는 결합상품·요금·상호접속 규제를 각각 통신·방송 시장내에서만 구사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융합 시장 전체를 고려해 규제 틀을 짜야한다는게 쉽지 않은 숙제다.

보편적 서비스와 필수설비 제도도 변화가 요구된다. 과거 전화와 TV가 막 대중화하던 시기, 이는 국민들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스였지만 앞으로는 초고속인터넷·이동전화·방송까지 그 대상이 한층 넓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 양극화 해소도 이와 무관치 않은 흐름이다. 네트워크를 독점한 통신사업자에 한해 그 설비를 타 사업자에게 개방하도록 한 필수설비 규제도 이제는 바뀔 시점이 됐다. 통신·방송 융합시대에는 이동통신 기지국과 유선방송의 수신제한장치(CAS) 또한 모든 서비스 사업자가 공유해야 할 설비라는 인식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새로운 국경없는 텔레비전 지침

 OECD의 수평적 규제체계에 따라 지난해 EU가 제시한 ‘새로운 국경없는 텔레비전 지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지침의 핵심은 특정 국가내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EU내 타국에 진입할때 추가 규제를 받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즉 IPTV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더라도 전송 플랫폼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닌, 국경간 자유로운 진입과 경쟁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따라서 EU의 새로운 국경없는 텔레비전 지침은 모든 시청각 미디어 콘텐츠에 대해 전송 플랫폼과 무관한 규제원칙을 밝히고 있다.

다만 전송되는 콘텐츠의 경우 ‘선형’과 ‘비선형’으로 구분, 차별적인 규제를 각각 동일한 원칙아래 적용하고 있다. 선형 서비스는 지상파 방송처럼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을 편성해 시청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나 은밀한 광고 등 기본적인 규제만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비선형 서비스는 IPTV와 같이 시청자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어떤 규제도 적용되지 않고 있다.

EU는 지난 89년 국경없는 텔레비전 지침을 만든 뒤 최근 통신·방송 융합이라는 시장흐름에 맞춰 지난해 새로운 지침으로 정비했으며 각국이 이를 준용토록 하고 있다.

◆기고-통방융합 시대 공익과 경쟁 논리

:이상우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 leesw726@kisdi.re.kr

통신·방송 융합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는 방송 시장에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공익성’을 저해한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과연 방송 분야에서 시장경쟁을 추구했을 때 방송의 공익성이 위축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방송규제의 논리로 이용되는 매체간 균형발전 원칙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매체간 균형발전 논리는 다양한 매체들이 일정 부분 시장 지위를 갖고 있을때 공급의 다원성과 내용의 다양성이 증진되고 이는 곧 시청의 다양성으로 이어져 공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원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반대로 공익성을 위한 유인책으로 정부가 기존 방송사업자에게 진입장벽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 주고 있는 뜻이기도 하다. 이면에는 진입제한이 없는 경쟁적 시장이 형성될 경우, 거대 사업자에 의해 독점화가 야기될 우려가 있으며 자연스럽게 다원성과 다양성이라는 공익목표는 해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매체간 균형발전 논리는 허점이 있다. 무엇보다 매체의 다원성과 내용의 다양성, 그리고 시청의 다양성 사이에 상관관계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매체가 다원화된다고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과 의견이 제공될 수 있으며, 나아가 시청자들은 ‘자발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의견을 골고루 소비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결국 일관된 연구결과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또 다른 문제점은 시장진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발생할 ‘비효율’은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진입규제라는 법적인 보호장치가 있게 되면 독점적 사업자는 신규서비스를 창출하거나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동기가 적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미디어 진입과 소유에 대해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는 맞지 않다. 융합시대에는 전송 매체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어 제도적인 소유·진입 규제보다는 신규 매체 진입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다양성이 보장된 시장에서 다양성을 위한 인위적 규제는 시장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와 OECD는 전송 사업자에 진입규제나 소유규제가 적용되기 보다는 경쟁을 추구함으로써 서비스 가격을 낮추고 질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융합 정책도 공익성이라는 전통적인 명분에만 매달려 특정 방송 집단의 이익을 보전해 주기보다는 진정 방송의 공익성을 지킬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술발전을 수용하고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소비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융합 규제정책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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