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DMA 역사와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의 퀄컴(QUALCOMM)이다. 지난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무명의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퀄컴은 여러 후보 기술 중 하나였던 CDMA를 개발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통신 및 반도체 업계의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퀄컴이 한국과 CDMA 기술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기는 상상하기 힘들다.
GSM 기술에 밀려 미국에서조차 표준화에 실패, 도산 위기까지 몰린 퀄컴은 한국이 이동통신 표준을 CDMA 기술로 결정하고 SK텔레콤이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드라마 같은 성장세를 이었다. 이후 퀄컴은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계열 등 한국의 휴대전화 업체와 협력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한국이 선보인 이동통신 ‘최초, 최고’ 기술에는 언제나 퀄컴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한국과 퀄컴은 그야말로 ‘윈윈’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약 2조17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소위 ‘퀄컴 로열티’는 국부 유출로 인식이 되면서 한국 기업의 극복 대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퀄컴의 공(功)=한국의 휴대전화 사업자들이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퀄컴이 있었다. 퀄컴의 성장과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의 휴대전화 생산업체도 빛나는 전성기를 맞게 된 것. 삼성전자의 애니콜이 세계적 명품 휴대폰으로 자리 잡은 것에는 퀄컴의 공이 컸다.
퀄컴은 한국 기업과 긴밀한 업무협조를 통해 차세대 이동통신 솔루션을 개발하고 CDMA 단말기 및 중계기 수출산업 확대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 한국의 휴대전화 및 이동통신 기업들은 퀄컴의 칩세트를 이용, 지난 2001년 3세대 이동통신 기술 cdma2000 1x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로는 EVDO 서비스 상용화에도 성공했다.
저렴한 가격에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cdma2000 1x EVDO는 2002년 5월 한국이 전 세계에 처음 소개했고 한국 CDMA 기술의 우수성과 통신기술의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스티브 알트만 퀄컴 사장은 “한국이 오늘날 세계 이동통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소비자들의 신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수출지향적인 국가정책에 이바지한 덕택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한국이 앞으로도 세계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는 이동통신 강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영원한 극복대상 ‘로열티’=한국과 퀄컴이 바늘과 실처럼 ‘긴밀한 사이’임을 강조할수록 따라오는 것이 바로 로열티 문제다. 한국 기업들은 휴대전화 칩세트와 기술 사용료로 연간 1조원이 넘는 금액을 퀄컴에 지급하고 있다.
퀄컴에 지급하는 로열티는 해가 지나도 줄지 않기 때문에 퀄컴이 세계적 기업으로 크는 데 한국 기업이 1등 공신임에도 최혜국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CDMA 도입 10년이 지난 지금, 퀄컴의 로열티를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향후 3세대 및 4세대 이동통신은 GSM보다는 WCDMA 등 CDMA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급부상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독자적 라이선스 구축’를 위해 차세대 이동통신에서 한국의 독자적 기술 개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삼성전자와 이오넥스가 CDMA 칩을 독자 개발한 것도 지금은 퀄컴의 강력한 지배력 때문에 당장 적용하지 못하지만 향후 퀄컴의 우산을 벗어나기 위한 큰 걸음이란 평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퀄컴 칩의 역사
“향후 3세대(G)뿐만 아니라 4G 이동통신에서도 모바일 칩 시장은 퀄컴이 장악할 것이다. 인텔도 못 따라 간다.”
국내 한 통신사업자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퀄컴은 지난 1995년 CDMA 무선 모뎀을 만들어 제조·서비스 사업자에 공급하기 위해 모바일 칩을 개발한 이후 10년 만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퀄컴은 cdmaOne (IS-95A, IS-95B), cdma2000 1x, 1x EVDO, WCDMA, HSPDA 등 혁신적인 칩을 발표, 무선통신의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퀄컴은 지난 1997년 4세대 칩세트인 MSM2300을 발표하면서 이동통신용 칩 개발의 본격적인 기치를 올렸다. 이어 1998년에는 5세대 칩세트인 MSM3000을 발표, 86.4Kbps 전송속도의 IS-95B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퀄컴은 1999년 9월 세계 최초로 3세대 무선통신을 지원하는 MSM5000을 발표하고 한국의 서비스 사업자와 3세대 무선통신 기술 상용화를 이뤄낸 쾌거를 올렸으며 gpsOne이라는 위치추적기술을 발표해 차세대 킬러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최초의 멀티미디어 칩세트인 MSM3300을 발표, 블루투스, MPEG, gpsOne 기능 등을 휴대폰에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MSM6200은 WCDMA와 GSM, GPRS를 통합했으며 이어 발표한 MSM6300은 GSM과 CDMA 표준을 함께 제공,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로밍이 가능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게 했다.
지난 연말 퀄컴은 2010년을 내다보는 기술 전략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cdma2000 1x EVDO와 HSDPA에 대한 향후 로드맵을 발표했고 향후 미디어플로(MediaFLO) 및 A-GPS를 기능을 내장하는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휴대기기에 통합, 가전, 컴퓨터, 게임기 등과 휴대기기가 결합한 기기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TIA2006에서는 cdma2000 1x EVDO rB 로드맵을 밝히기도 했다.
향후 퀄컴은 많은 기능을 단일 칩세트로 집적하고 비용과 전력 소모량을 줄이며 한번 충전으로 보다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칩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뷰-스티브 알트만 퀄컴 사장
“퀄컴은 한국 기업들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입니다. 한국의 파트너와 항상 윈윈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CDMA 기술을 선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티브 알트만 퀄컴 사장은 ‘윈윈’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며 한국과 협력을 강조했다. WCDMA 시장에서는 한국과 퀄컴이 더 큰 공생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
“WCDMA 휴대전화 가격이 GSM 가격까지 떨어지게 되면 한국 휴대전화 기업에 더 큰 기회가 올 것입니다. WCDMA는 GSM처럼 노키아 등 일부 회사가 독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전화 기업은 가격 경쟁력 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도 쌓았습니다.”
알트만 사장은 지난 9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로열티 협상을 직접 진두 지휘했던 당사자. 때문에 한국과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알트만 사장은 “한국과 퀄컴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만들고 있다”라며 “한국이 CDMA 강국에서 3∼4세대 이동통신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퀄컴의 칩세트 개발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