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IPTV 해결 어떻게…
지난달 한국 야구 대표팀은 미국에서 열린 야구월드컵(WBC)에서 ‘무패 돌풍’을 일으켰다. WBC는 야구사 길이 남을 사건이기도 하지만, IPTV라는 통·방 융합 매체 역사에서도 한 줄 이름을 남길 예정이다.
WBC 경기때 국내 인터넷 방송 클릭 수가 무려 300만∼330만건에 달한 반면 지상파TV 시청자는 14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경기가 낮에 열렸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방송 접근에 쉬운 수단으로 인터넷방송을 택했다. 인터넷방송이 지상파TV 시청자수를 넘어선 사례로, 새로운 시청 문화를 예고한 셈이다.
최근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통신사업자의 IPTV와는 별개로, 또 다른 형태의 IPTV인 이른바 인터넷방송(웹방송)은 이미 보편화됐다. KT 등이 준비중인 IPTV가 자가망 가입자에게 방송을 제공하는 형태로 ‘폐쇄망 기반 IPTV’라면 이미 개방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매체에 방송을 제공하는 ‘개방망 기반 IPTV’는 개점했다.
국내에선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IPTV 도입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며, 아직 도입 일정은 물론, 도입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지리한 논쟁 속에서 ‘개방망 기반 IPTV’는 이미 ‘기술→기업→소비자’ 단계까지 확산됐으며 사실상 막기 어렵다는 것. 특히 ‘개방망 기반 IPTV’는 기본적으로 1인 방송으로서 P2P형태를 띄고 있다. 이를테면 A라는 개인이 특정 방송을 녹화한 후 이를 B라는 개인에게 전송해주는 형태다.
여기에 IP 주문형비디오(VOD)도 시장 진입 준비를 마쳤다. TV포털 전단계인 IP VOD는 사업자가 특정 가구에 VOD수신용 셋톱박스를 임대·보급하고 소비자는 이 셋톱박스를 TV에 연결하면 원하는 방송콘텐츠를 선택해 볼 수 있다. 아직 편성된 채널을 제공하진 않지만, TV라는 디스플레이에 진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나로텔레콤이 1대 주주로 있는 하나로미디어가 올 상반기중 상용화할 전망이다. 인터넷포털사업자나 가전 업체들이 준비중인 TV포털도 어떤 형태로든 통신·방송 융합형 유사IPTV에 속하는 비즈니스다.
이런 수많은 서비스 중 가장 소비자에게 소구력을 갖출 폐쇄망 기반IPTV는 제자리 걸음이다.
폐쇄망 기반 IPTV를 준비중인 KT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법·제도 정비가 완비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사실‘IPTV의 진입이 불가하다’는 법 조항은 없다. 물론 ‘IPTV 진입의 근거조항’도 없다. 대기업으로선 그러나 정부 부처와 기관간 논란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않는다는 것.
최근엔 KT가 IPTV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세웠던 망투자 계획을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T가 올해 주요 네트워크 투자 분야 중 하나인 댁내광가입자망(FTTH) 장비 도입을 추진하면서 IPTV서비스를 지원하는 단말(ONT) 구매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 KT가 그동안 2500억원 규모의 FTTH 투자(약 10만 회선) 의사를 밝히면서 주 용도를 IPTV라고 밝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IPTV 전략 및 상용화 일정을 대폭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KT로선 법·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제 IPTV 도입 논쟁은 모두다 패배한 게임으로 귀착될 수순을 밟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그리고 산업계가 신속한 양보와 결정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방송위원회의 입장은 ‘IPTV를 도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방송 영역이기 때문에 방송으로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법으로 IPTV 도입이 힘들면 이는 다시 논의하면 된다’이다. 정보통신부는 ‘방송법 적용은 사실상 IPTV를 하지 말자는 뜻이기 때문에 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미리 진입장벽을 쌓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법 개정은 BCS법 등을 따로 마련할 것이다.
두 진영간 힘겨루기 속엔 소비자(수용자)가 빠져있다.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통·방 융합에 따른 정책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소비자”라고 지적했다. 임 원장은“소비자 선택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기술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IPTV 청신호
미국도 IPTV 서비스 도입에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하원이 지역방송사업권(프랜차이즈) 허가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을 제출,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청신호가 켜졌다.
미 하원이 지난달 말 제출한 법안은 ‘통신업체가 인터넷TV(IPTV) 사업을 위해 주정부, 또는 시의회의 허가를 일일히 따내지 않아도 전국단위의 프랜차이즈를 한번에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동안 AT&T, 버라이즌 등 통신사업자들은 IPTV사업에 필요한 프랜차이즈 획득 절차가 까다로와 전국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케이블TV 정책에서 한국과 ‘프랜차이즈’라는 유사점을 갖고 있다. 한국은 방송권역을 77개로 나눠, 권역별로 케이블TV 사업권을 확보한 사업자만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1∼4차에 걸쳐서 지역사업자를 선정, 총 119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태동했다. 문제는 SO는 처음부터 지역사업자를 표방했기 때문에 프랜차이즈를 통한 시장 진입이 편리했지만 IPTV는 전국 사업을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한국과 유사해 수천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통신사업자가 IPTV를 하기 위해선 일일이 주정부 또는 시의회에서 수천개의 허가권을 획득해야 한다. IPTV 전국 서비스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미 하원은 ‘전국 단위 프랜차이즈의 도입’을 전제로 ‘주정부는 IPTV 허가권을 사실상 박탈당하는 대신 통신업체로부터 유료 TV매출의 5%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의 IPTV 시장은 개화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미국 통신업계는 “이러한 규제완화가 소비자들에게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채널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IPTV라는 화두를 놓고 통신이냐, 방송이냐 라는 영역 논쟁을 펼친게 아니라 소비자를 위해 어떤 형태로 IPTV를 도입해야 하는지느를 고민한 셈이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지난 1년반 동안 ‘IPTV 영역논쟁’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내달로 예정된‘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출범’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맞이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국내 IPTV시장 규모 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