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코드46

 정보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개인의 사생활은 투명하게 노출돼 오히려 제약을 받고, 모든 개인 정보는 거대국가의 통제 아래서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될지도 모른다.

우울한 미래의 인간 초상을 보여주는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SF 영화 ‘코드46’에서, 국가는 정보를 통제하고 장악하는 파시스트의 또 다른 이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외형적 내러티브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보험회사의 조사원 윌리엄 겔드(팀 로빈스 분)는 위조 신분증을 조사하기 위해 상하이로 간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그는 마리아 곤잘레스(사만다 모튼 분)라는 여자가 위조 신분증 조직에 관련되어 있음을 눈치 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녀를 보는 순간 윌리엄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언제나 사랑이 문제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해도 인간의 마음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낯선 도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슬픈 행로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너무나 쓸쓸해서 오히려 더 매혹적이다. 화려한 도시와 쓸쓸한 사막, 도시의 안과 밖을 나누어 체제 내의 삶과 일탈된, 혹은 체제 내로 흡수되지 못하는 삶을 보여 준다. 사만다의 범죄를 눈감아 주는 윌리엄.

그러나 부인과 자식들이 기다리는 시애틀로 돌아왔지만 마리아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상하이를 찾았을 때 마리아는 예전의 직장에 없었다. 그녀는 도시 외곽의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윌리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코드46’을 어겼고 임신중절 수술을 당했으며 윌리엄을 만난 기억을 삭제 당했다.

코드46이란, 남녀의 유전자가 25%이상 일치하면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임신을 했다면 태아는 낙태되어야 한다. 냉철한 이성을 갖고 있고 조직에 충성하는 조사관 윌리엄은 왜 ‘코드46’을 어겼을까? 마리아의 머리카락으로 DNA를 조사한 결과, 그녀의 유전자는 50%나 윌리엄과 일치했다.

오래 전에 죽은 윌리엄의 어머니가 갖고 있던 유전자로 복제된 사람이 마리아였던 것이다. 역시 인간은 같은 유전자에 이끌린다. 첨단 미래사회에서도 어떤 과학을 힘으로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간 마음의 신비, 사랑의 신비를 이 영화는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빡빡머리 예언자로 등장했던 사만다 모튼은 여전히 신비한 눈빛을 잃지 않고 있으며,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 팀 로빈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울한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형상화 한 마이클 윈터버텀의 표현 스타일이 좋다. 첨단 도시와 도시 밖에 존재하는 공허한 사막의 대비는 우리 마음의 겉과 속을 충돌시킨 것처럼 매혹적 풍광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중요한 촬영장소가 상하이와 두바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각각 아시아와 중동의 대표도시이기도 한 이 도시들의 매력은 극과 극의 이중적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공유가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이 내부에서 진행 중인 모순의 용광로가 두 도시의 표정 속에는 담겨 있다.

이 작품에서 배경은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인 상황은, 그들이 서 있는 모순의 도시와 사막이 뒷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더 많은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더 깊숙이 탐구되었다면 훨씬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두 사람의 사랑을 설명하는 근거자료로만 제시된 것은 불만이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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