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지사에 다니는 A 차장. 영업 접대비 영수증을 잘못 처리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말레이시아 지역 법인에 전화를 건다. 지난해부터 아·태지역 총무팀이 말레이시아 법인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인원 10명 미만의 신생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 이야기가 아니다. HP·유니시스·인텔 등 대형기업의 사례다.
글로벌 컴퓨팅 기업의 해외법인 운영 전략이 바뀌고 있다. 로컬 법인끼리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기술·서비스 인력까지 공유하는가 하면 특정 업무는 한 곳에 몰아서 다른 법인이 이를 공유하도록 정책을 바꾸고 있다.
◇해외 법인, 경계 사라진다=HP의 마크 허드 신임 CEO는 올 회계연도부터 전 세계 법인에 있는 HP 서비스 조직을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HP의 서비스 인원 대부분이 ‘글로벌 딜리버리’ 조직으로 편입됐다. 이들은 한국 지사에 속해 있지만 글로벌 전략에 따라 중국·일본·호주 서비스 업무도 맡는다.
한국유니시스의 위험 관리팀도 비록 소속은 한국이지만 홍콩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LG카드에서 구축한 시스템 노하우를 내세워 홍콩 법인과 함께 금융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
국가별 법인 특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인도는 콜센터, 말레이시아는 회계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추세.
한국HP는 지난해부터 지역 부서를 싱가포르로 통합하는 분위기다. 한국오라클도 2만달러 이하 제품을 파는 인력은 모두 호주 콜센터 직원을 활용한다. 호주에서 별도의 한국인을 뽑는 셈이다. 인텔 역시 ‘공유 서비스 센터’ 개념을 도입해 회계 등의 지원 업무를 말레이시아 페낭에 모두 모았다.
◇효율화에 초점=이는 전 세계 수십개 법인을 거느린 글로벌기업의 인력과 자원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법인마다 같은 업무의 인력을 중복해 충원하기보다는 인력을 지역별로 통합해 ‘풀(pool)’로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콜센터·회계 업무를 한 곳에 집중하면 직원 교육과 업무 표준화가 쉽다. 회계 투명성도 높아진다.
박성민 인텔코리아 이사는 “아무리 규모가 큰 지역 법인이라도 영업에서 총무·인사·회계 등 A부터 Z까지 모든 조직을 끌고 가는 법인은 없다”고 말했다.
IT 인프라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이영환 한국후지쯔 부장은 “네트워크 발달, 회의 시스템 개선, 각종 데이터 실시간 공유 등 IT 인프라가 고도화하면서 다국적 기업이 법인 자원 공유를 통한 인력·자원 효율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법인 기회냐, 위기냐=글로벌기업의 전략 변화는 한국 법인에 기회이자 위기다. 국내 업체에 속해 있지만, 국제 업무를 맡을 기회가 늘어난 것은 기회라는 분석.
그러나 국내 법인은 통신 등 일부 분야에서 앞서 있지만 특성화할 ‘거리’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위기라는 지적도 많다. 동남아와 인도에 비해 인건비도 비싸 다른 지사에 업무를 넘겨주는 때도 많다. 영어 실력도 평균적으로 낮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인도는 R&D 특성화 법인으로 뜨고 있다.
이현우 한국유니시스 상무는 “글로벌 법인은 인력이 국제 업무에 더욱 적합한 인재로 거듭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영어 실력과 글로벌 스탠더드(국제적 업무 기준)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 의식도 동시에 있다”고 말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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